“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주님께서는 바리사이의 또 다른 위선을 지적하시며
다시 너는 불행하다고 불행선언을 하십니다.
그런데 불행선언을 우리는 잘 이해해야 합니다.
너는 위선자니까 저주와 벌을 받아 불행해지라는 뜻이 아니라
위선자로 계속 살면 너는 비참해지고 불행해지니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이렇게 바꿔 이해하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속병이 들은 사람이 있는데 겉의 피부에 뭐가 계속 나자
겉 피부약을 바르거나 화장으로 그것을 감추려고 합니다.
이에 의사는 한의학적으로 속병을 지금이라도 고쳐야지
그 속병을 근본으로부터 고치지 않으면 점점 더 나빠져
아무리 겉 치료를 해도 고칠 수 없게 될 거라고 얘기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실로 속은 내버려둔 채 겉만 신경 씁니다.
위선을 하는 것이 달리 위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속은 내버려둔 채 겉만 신경 쓰다보면 그게 위선을 하는 것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보통 이래서 불행한 것입니다.
속의 병은 잘 보이지 않기에 모르고
겉의 병만 고치다가 속의 병은 계속 키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그래도 덜 불행하거나
불쌍하기는 해도 불행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속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속병을 고칠 터이지만
속병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놔두고
겉 병에 대해서만 신경 쓰는 사람은 알면서도 그러니 더 불행치요.
자기의 문제가 뭔지 모르는 사람은 무지일 뿐이기에 불쌍하지만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사람은 회개치 않는 사람이기에 불행합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무지한 사람은 불쌍하지만 희망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느님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구원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회개치 않는 사람은 알면서도 그러기에 희망이 없고 불행합니다.
하느님께서 아무리 구원하시려고 해도 구원을 주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속병은 무엇이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 그 깨끗해져야 할 속의 더러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탐욕과 방종>이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탐욕이 왜 더러운 간가요?
그것은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들은 다 쓰레기인데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김: 필리 3,8)
탐욕은 그 쓰레기들을 욕심 부리고 그것으로 채우는 거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방종은 왜 또 더러운 건가요?
이 역시 욕망에 끌리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에 대해서는 교회 밖 세속에서도
욕망에 끌려 온갖 더러운 짓을 한다고 얘기하잖아요?
오죽하면 욕망의 찌꺼기니 욕망의 배설물이니 하는 말이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 안의 탐욕과 방종을 근본적으로 도려내라고 하십니다.
한자말의 근절根絶인 것이지요.
잡초가 자꾸 생겨난다고 겉에 드러난 풀만 베면 뿌리에서 또 자라지만
뿌리 채 뽑으면 더 이상 잡초가 생겨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위선의 근절에 대해서 묵상하는 날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