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오늘 복음에서 이방인 백인대장은 예수님을 졸라 종을 치유코자 하지만
직접 찾아가 뵙지도 않고 방문코자 하시는 예수님도 거절합니다.
이런 백인대장에게서 우리는 겸손과 믿음을 봅니다.
겸손이란 것이 본래 그런 것이지만
백인대장의 겸손은 진정 가식이나 거짓, 억지스러움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백인대장의 겸손을 특별하게 얘기하는 것은
우리의 많은 겸손이 실은 진정한 겸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겸손은 오늘 백인대장의 겸손을 교만하다고 욕보입니다.
어찌 도움을 청하는 주제에 직접 찾아가 아뢰지도 않고
친히 오시겠다는 주님을 거절하느냐고 얘기할 겁니다.
우리의 겸손은 치유해주시는 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고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제 생각에
이것은 어쩌면 깡패 두목과 졸개 사이의 겸손일 것입니다.
우리의 겸손은 종종 이렇게 남의 밑에 있는 것으로,
그것도 굴복 또는 굴욕적으로 밑에 있는 거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겸손은 겸손이 아닌 굴종이거나
겸손이라고 해도 높은 차원의 진정한 겸손이 아닙니다.
겸손이란 자기를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할 줄 아는 것이고
더 나아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고 사랑하는 것이며
굳이 관계적으로 얘기한다 해도 위아래의 겸손이기보다는
하느님 앞에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서의 겸손입니다.
그래서 오늘 백인대장에게서 볼 수 있듯이
진정한 겸손, 영적인 겸손은 성과속의 겸손입니다.
자기의 죄와 죄성을 깊이 들여다보고 하느님께 자신이 부당하고,
더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이 부당하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떤 때 씻지 못하여 더럽고 악취가 나면
사람들이 많은 전철을 타기가 꺼려지고 특히 아가씨가 있으면
더더욱 그 옆에 가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사야가 거룩하신 하느님 앞에서 자기 입이 더러우니 부당하다고 한 거나
오늘 백부장이 찾아뵙기에도 부당한데
주님을 오시게 하는 것은 더더욱 부당하다고 한 것이 다 이런 겸손입니다.
다음으로 백인대장은 참으로 믿음의 사람입니다.
겸손 때문에 굳이 오실 필요가 없다고 하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주님의 능력에 대한 완전한 믿음 때문에 그리 한 것입니다.
말씀으로 모든 것을 있게 하시는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낫게 하시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고
여러 말도 필요 없고 한 말씀으로 낫게 하실 것임을 믿은 것입니다.
실로 주님께는 치유가 나으라는 명령 한 마디로도 충분합니다.
손을 잡아주시고, 손을 얹어주시고, 손을 잡아주시는 것 등은
치유를 위해선 굳이 필요치 않고 사랑을 위해서만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도 미사를 드리며 영성체 전에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라는 고백을 할 때
건성으로 하지 말고 백인대장이 되어 진심으로 고백하도록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