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결과를 놓고 보면 예수님의 제자 되기에 가장 합당치 않은 사람은
배반자인 유다 이스카리옷이겠지요?
그렇다면 출신으로 보면 제자들 중 누가 가장 합당치 않은 사람일까요?
베드로를 비롯한 첫 제자들이 어부였으니 가장 합당치 않은 사람들일까요?
아니면 혁명당원 출신의 시몬일까요?
제 생각에는 세리 출신의 마태오가 가장 합당치 않은 사람입니다.
사실 마태오가 주님의 제자가 되고 사도가 되었을 때
어떻게 저런 죄인이 제자가 될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같이 있던 바리사이들은 주님께서 죄인들과 식사를 하는 것만도
의아하게 생각하였고 더 나아가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식사를 같이 하는 정도가 아니라 마태오가 제자가 된 것은
그들에게 더더욱 의아하고 불쾌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분명, <왜 마태오를?>하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진정 왜 마태오를 제자로 부르신 걸까요?
마태오가 진정 합당한 사람이었기에 부르신 걸까요?
바리사이와 저와 같은 인간의 눈으로 보면 가장 합당치 않지만
주님의 뜻은 우리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태오를 부르심으로써 주님께서는
성소란 인간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신 겁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폐하고 새로운 임금이 될 사람을 세우려고 할 때
막내 다윗이 아닌 다른 형들을 뽑으려고 하자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고 하셨지요.
주님께서 마태오를 부르신 뜻은 죄인을 뽑고자 하신 것이고,
그럼으로써 죄인도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으며,
죄인도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함을 가르치시고자 하심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된 다음에는 제자답게 죄를 짓지 말아야 하지만
되기 전에는 죄인이었어도 문제가 될 거 없다는 뜻이며
죄인이었어도 회개하여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인 거지요.
두 번째로 주님께서는 마태오 한 사람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마태오를 통해 죄인 모두를 부르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볼 수 있듯이 주님께서 마태오의 집에서 식사를 하시자
주변의 죄인들도 주님의 식탁으로 모여들지 않습니까?
주님도 마태오 한 사람만으로 만족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죄인들도 마태오를 부르시는 분은 분명 자기들도 받아주실 거라고 믿기에
모두 용기를 내어 모여들은 것입니다.
세 번째는 실상 죄인 아닌 사람이 없기에 마태오도 부르신 것일 뿐이지만
죄인임에도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그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응답으로
다른 죄인을 주님께로 인도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오늘 영성체 후 기도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 복된 마태오가 구세주를 집에 모시고 잔치를 열었듯이 오늘 저희도”
그렇습니다.
마태오는 자신을 불러주신 주님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잔치를 열었으며
이 잔치에 주님도 초대하고 다른 죄인들도 초대하여
주님과 죄인들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우리도 내가 죄인임을 인정한다면,
죄인임에도 주님 초대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잔치를 열어 주님도 초대하고 죄인들도 초대해야 할 것입니다.
마태오도 우리도! 우리는 모두 잔치를 여는 자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