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두려움에 떠는 방식으로,
남몰래 오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 날이 언제인지,
그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버지만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지에서 오는 막연함,
그리고 그 막연함 때문에 우리는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날을 준비시키시기 위해서
여러 가지 표시를 주십니다.
노아 때에 노아를 통해서 사람들을 준비시키신 것처럼,
사람을 통해서 혹은 자연을 통해서 우리를 준비시키십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그 표시를 알아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조언을 해 주지만,
우리는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 조언을 비난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합니다.
또한 반대로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내 뜻대로 세상을 바라보다보니,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의 눈이 아닌 비난의 눈으로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충고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표현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두 경우 모두 분열과 다툼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충고를 하는 사람도
하느님의 눈으로,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이야기 해 주어야 하지만,
조언을 듣는 사람도
그것이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메세지는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서,
나의 편리를 위해서 충고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실현되려면
그것을 표현해도 좋은지,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은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충고를 듣는 사람은
그것이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표시,
당신께 더 가까이 부르시는 하나의 표시일지도 모른다는
관점으로 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깨어 있는 모습이고,
준비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순간 순간 노력할 때,
우리는 오시는 주님을 더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