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여라.”
오래 전 학교이름과 교회이름 때문에 좀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염광고등학교와 광염교회 때문이었는데요.
처음에는 이것이 성서적인 표현인 줄 몰랐는데
광염교회에 대한 책이 나와서 그걸 보고 알았습니다.
소금 염鹽과 빛 광光을 합친 말이지요.
그런데 교회는 이런 이름을 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학교 이름으로 이것을 쓴 것을 보고서는 이 학교의 설립자가
독실한 그리스도인, 아마 틀림없이 개신교인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름을 어떻게 그리 자신 있게 쓸 수 있을까도 생각했습니다.
설립자와 설립자의 학교가 이름값만큼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할까?
그리고 저라면 이런 이름을 제가 하는 운동단체에 붙일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선교단체의 이름을
<염광 선교단>이라고 이렇게 이름 붙일 수 있을까 그런 얘깁니다.
이렇게 생각을 해보니 오늘 주님 말씀이 이런 뜻이겠구나! 감이 잡힙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는 말씀이
지금의 저나 우리를 보면 어림도 없지만 그래야 한다는 말씀이고.
그리 되라고 사명을 주시며 그에 맞갖은 격려를 하시는 것이라고.
옛날 제가 야학을 할 때 교가처럼 부른 노래가 있습니다.
등불이라는 노래인데 그 가사 중에 이런 내용이 있지요.
“넓고 외로운 세상에서 길고 어두운 여행길 너와 나누리.
하나의 꽃을 만나기 위해 긴긴 밤들을 보람되도록
우리 두 사람은 저 험한 세상 등불이 되리.”
야학이라는 말 자체가 의미하듯 지금 어렵게 밤에 공부를 하는 처지지만
긴긴 밤들이 보람되도록 앞으로 험한 세상 등불이 되자는 거지요.
사실 밤, 그것도 가장 어둔 밤이 지나야 새벽이 오듯이
어둔 밤을 거친 사람들이 등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둔 밤을 지나면 우리가 저절로 등불, 곧 빛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둠을 경험했기에 빛을 갈망하고, 빛을 갈망하기에 빛에로 나아가고,
빛으로 나아가기에 빛을 받아 빛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밤, 어둠을 참혹히 경험하지 않은/못한 사람은
빛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을 어둡게 합니다.
양지만 골라 다닌 인생들이 대개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대통령을 비롯한 재벌과 지도자들이
얼마나 우리사회를 어둡게 하고 있습니까?
양지만 골라 다닌 사람들이지요.
그들의 성공은 다른 사람의 실패와 좌절을 밟고 이룬 것이고,
그들의 부는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빼앗아 이룬 것인데
세상은 이런 사람들이 판을 치기에 너무도 어둡고 나아질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둠 가운데서 모두 절망하고 있을 때
어둠을 통과하고 빛을 갈망하며 빛에로 나아가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광화문의 촛불이 밝혀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이런 촛불도 있어야지만 다른 등불도 얘기합니다.
‘너희의 착한 행실’이 사람들도 비추고 하느님도 찬양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나쁜 짓을 하여 세상이 어두울 때
우리의 작은 착한 행실 하나가 이 어둠을 한탄하는
사람들 앞을 비추는 작은 등불 되게 하라는 거지요.
그런데 그것이 사람들 앞만 비추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는 것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빛을 받아 그 빛을 비출 때이겠지요.
하느님 사랑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말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