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170 추천 수 1 댓글 0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성령 강림 대축일-2017

 

여러분도 그렇게 하시겠지만 저희 수도원에서는 성령강림을 앞두고

준비하는 9일 기도를 합니다.

올해도 9일 기도를 하기 때문인지 그저께 마라톤 연습을 하며

성령강림을 묵상하며 마라톤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달리기를 시작하자마자 성령께서 오셔도

맞을 자격이 내게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였습니다.

평의회 등 여러 가지 회의와 일들로 다른 해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를 들여다보니 오셔도 모실 자리가 없겠구나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가끔 어느 집이나 방에 들어가려는데 발 디딜 자리도 마땅치 않아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게 되는데 저의 내적인 상태가

마치 이와 같으니 모셔 들이기 전에 비워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신 성령을 모시기 위해서는 먼저 비워야 합니다.

욕심을 비워야 하고 욕심으로 소유한 것을 비워야 함은 물론

근심걱정을 비롯한 갖가지 복잡한 생각들도 비워야 하고,

미움이나 분노나 시기질투와 같은 악감정들도 비워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제 이런 것들을 비워내는 외적인 표시로 방청소를 했습니다.

빗자루 질과 물걸레질을 했다는 뜻이 아니라 너절하게 방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을 방에서 빼어내 치어버렸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비움에 대해 묵상하고 나니 이제 열림에 대해 생각이 미쳤습니다.

방을 깨끗이 치운 것이 성령을 모시기 위함이고 그래서 그도 중요하지만

들어오시도록 나를 여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기껏 청소해놓고 문을 안 열어드리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누가 성령이 오시는데 문을 안 열어드리겠습니까?

성령이 오신 것을 알고서도 문을 열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므로 문을 열지 않는 사람은 두 부류의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는 성령이 오신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다른 하나는 성령이 아니라 악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나.

 

천상적이고 영적인 것에는 무디고 눈치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 것에 너무 관심이 많고 그래서 그런 감각만 발달한 사람이거나

슬기로운 동정녀와 미련한 동정녀에서 미련한 동정녀와 같은 사람입니다.

 

제가 종종 하는 말이

눈치를 봐서는 안 되지만 눈치는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남의 눈치를 보는 것은 두려움으로 남을 보는 것이지만

눈치가 있는 것은 사랑으로 남을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의 처지와 필요를 사랑으로 읽는 것이 눈치이지요.

 

어제는 전철을 타고 어디를 가는데 70대 노인이 탔습니다.

젊은이들 아무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좀 떨어져 있었지만

제가 가서 제가 앉았던 자리에 앉으라고 양보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네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한 젊은이가 냉큼

제가 양보한 자리에 가 잽싸게 앉아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기가 막히기도 하였지만 어떻게 자기의 필요만 보이고

다른 이의 더 큰 필요는 보이지 않는지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는 또 다른 이유 때문에, 곧 두려움 때문에

사랑으로 오신 성령을 악령으로 오해하고 문을 닫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라보도 놀란 사람이 솥뚜껑을 보고도 놀라고,

엄청난 풍랑에 죽게 된 제자들이 주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한 것 같이

두려움이 가득 찬 사람은 뭘 봐도 악령으로 생각하고 문을 닫아걸어

결과적으로 성령을 모셔 들일 수 없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말하듯 원래는 사랑이 두려움을 몰아내는 법인데

두려움이 오히려 사랑이신 성령을 몰아내는 셈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과 두려움은 이런 관계입니다.

사랑이 더 크면 사랑이 두려움을 몰아내지만

두려움이 더 크면 두려움이 사랑을 몰아내지요.

 

그런데 인간적으로만 보면 두려움과 사랑은 물과 불처럼 상극이지만

신앙차원으로 올라가면 두려움은 거룩한 두려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두려움이 크면 클수록 그리고 그 두려움을 자기 힘이나

인간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없으면 마침내 하느님의 도움을 찾는

거룩한 두려움으로 바뀌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만 열린 두려움 안으로 성령이 임하시고 충만케 되면

이제 아무 두려움이 없어 모든 사람에게도 자신을 열게 되고

오늘 사도행전에서 보듯이 모든 사람과 성령의 언어로 소통케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는 소통과 방언의 은사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 2독서의 말씀처럼 성령의 은사는 무엇보다 일치의 은사입니다.

각각의 다양한 은사에도 불구하고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이루는 은사지요.

 

올해는 성령의 그 많은 은사 중에 소통과 일치의 은사를

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청해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22Jul

    성녀 막달라 마리아 축일-사도들을 위한 사도

    우리 교회의 전례는 여성에게 인색합니다. 남자하고 비교할 때 축일로 지내는 성인이 성모 마리아를 제외하고 다른 여자 중에는 없고 유일하게 막달라 마리아만 축일로 지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여자에게 인색한 교회가 왜 막달라 마리아게만은 축일...
    Date2017.07.22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877
    Read More
  2. No Image 21Jul

    연중 15주 금요일-내것도 네것, 네것도 내것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포르치운쿨라 행진을 시작하는 우리에게 너무도 딱 맞는 말씀이고, 제게는 하느님의 섭리로 느껴집니다. 독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까지 가는 탈출기이고 복음은 주님께서 ...
    Date2017.07.2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4 Views1611
    Read More
  3. No Image 20Jul

    연중 15주 목요일-고생에서 건져주시는 하느님

    “이집트에서 겪는 고난에서 너희를 끌어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기로 작정하였다.’   오늘은 일어나 오늘 복음의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을 읽는 순간 <고생>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사람을 보고 삶도 보자는 생각이 퍼뜩 ...
    Date2017.07.20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533
    Read More
  4. No Image 19Jul

    연중 15주 수요일-떨기나무는 왜 타버리지 않을까?

    “그가 보니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는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모세는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아야겠다.”   오늘 탈출기 얘기는 모세가 하느님 체험을 하는 얘깁니다. 모세가 앞서 한 행위, 곧 이집트인을 죽이고 동족을 구한 행위는 하느...
    Date2017.07.19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532
    Read More
  5. No Image 18Jul

    연중 15주 화요일-내 인생의 고마운 파라오들

    현실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종종 드라마틱하다고 하거나 아주 극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어떤 드라마가 막장이라고 비판하기도 하는데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을 시청자를 끌기 위해 만들어내기 때문이지...
    Date2017.07.1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786
    Read More
  6. No Image 17Jul

    연중 15주 월요일-맞서든 갈라서든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고,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오늘 주님께서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하시고, 가족 간에 갈라서게 하기 위해 오셨다고 하시는데 칼로 관계를 끊어 갈라서게 하고 ...
    Date2017.07.1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498
    Read More
  7. No Image 16Jul

    연중 제 15 주일-유능한 농부가 아니라 끈질긴 농부이신 하느님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할 때 의구심이 드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오늘 1독서에서 하느님의 말씀은 헛...
    Date2017.07.1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538
    Read More
  8. No Image 15Jul

    연중 14주 토요일-외로움의 두려움

    “그러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마라.”   오늘 독서로 오랫동안 들은 창세기 얘기가 끝이 나고 그 이야기가 야곱과 요셉의 얘기로 끝이 납니다.   그런데 아버지 야곱이 죽자 요셉의 형제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다시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
    Date2017.07.1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698
    Read More
  9. No Image 14Jul

    연중 14주 금요일-조심은 하되 걱정은 말라!

    어제와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이 제게는 일반적으로 들리지 않고 제게 특별히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렸습니다. 그것은 정확히 1주일 후면 포르치운쿨라 행진을 시작하기 때문인데 그러니까 이 말씀은 저와 행진단에게 행진의 지침이 되는 말씀입니다.   ...
    Date2017.07.14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595
    Read More
  10. No Image 13Jul

    연중 14주 목요일-송사訟事를 성사聖事로 바꾸는 신앙

    오늘 요셉과 형제들의 얘기는 제가 구약성서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얘기 중의 하나이고 신앙인으로서 제 삶을 가다듬게 하는 얘기입니다.   만사에서 하느님을 보고, 인간사를 하느님의 일로 바꾸는 것이 믿음이고 그럴 수 있어야 믿음이라고 할 수 있...
    Date2017.07.13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3 Views1733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532 533 534 535 536 537 538 539 540 541 ... 734 Next ›
/ 734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