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왕 축일하면 부정적인 느낌이 제게 있습니다.
왜냐면 왕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느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왜 그런 부정적인 느낌이 있느냐 하면 말할 것도 없이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왕들은 좋은 왕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럼에도 우리가 그리스도 왕 축일을 지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렇지 못한 세상과 세상 권력자들에게는 참 왕의 모습을 제시하는 것이요,
그 왕의 백성인 우리는 그리스도 왕의
그 왕직을 세상이 볼 수 있게 증거 하라는 뜻이겠지요.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볼 때 참 왕의 공통점은 판결을 내리는데
옳게 판결을 내리는 분입니다.
“너희 나의 양 떼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양과 양 사이, 숫양과 숫염소 사이의 시비를 가리겠다.”(1독서)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복음)
그런데 복음에서 옳은 판결의 기준은 당신께 어떻게 잘 했느냐 그건데
당신께 잘하는 거란 다름이 아니고 가난한 이들에게 잘 하는 거랍니다.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내게 해 준 것이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오늘 참 왕이란 판결을 옳게 하는 왕이기도 하지만
자기 백성을 자기의 형제로 여기는 왕이며 그래서
가난한 이에게 잘하는 것이 곧 자기에게 잘 하는 거라 말씀하시는 겁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우리 위에 군림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신이신 분이 사람들의 왕이 되기 위해서 사람이 되어 오셨다면
귀족 집안의 외아들이 깡패들의 두목 노릇 하고 싶어서
깡패 소굴로 와 깡패가 되는 것보다도 더 말이 안 되는 거지요.
오늘 1독서는 그래서 목자의 개념으로 참 왕의 모습을 전합니다.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
모든 것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서
흩어져 죽어가는 생명들을 다시 살게 하려고 오신 거라는 얘깁니다.
우선 잃어버린 양과 흩어진 양을 찾아내 데려오려고 오신 분이신데
그런데 주님께서는 어디로 데려가려고 하시는 겁니까?
그것은 누누이 말씀하셨듯이 아버지가 계신 곳이지요.
주님께서 우리를 나의 형제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당신도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이고
우리도 당신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이며
그러니 같은 형제들인 당신과 우리는 모두 아버지께 가야 하는 거지요.
그런데 우리 가운데는 우리가 잃어버린 형제도 있고
싫다고 스스로 공동체를 떠난 형제도 있습니다.
본당에서 신자들끼리 마음에 맞지 않아서 또는 싸워 상처를 입고서
성당에 나오지 않고 신앙생활을 그만 두는 사람이나
사는 모습에 실망을 하고 수도원을 떠나는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이지요.
사실 우리는 서로 다 마음에 맞을 수 없고 싸우지 않을 수도 없으며
상처를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사는 모습이 실망스럽지 않거나 그래서 실망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인간인 이상 다 그럴 수 있는데 정말 문제는 그렇게 상처 받고
그렇게 떠나는 사람을 형제라고 생각지 않는 것이 문제고
그래서 붙잡지도 찾지도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왕직을 살아야하는 우리라면 주님처럼 형제를 형제로 섬기고,
그럼에도 우리를 떠났다면 그도 형제임을 생각하며 찾아나서야 할 것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선교은총 나래를 훨훨펴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정릉골 한 아타시 드림.
신부님 축일을 축하드려요
하느님안에서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