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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레오나르도 2019.05.19 04:57

부활 제 5 주일-생활의 사랑

조회 수 1203 추천 수 1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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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 5 주일은 새로움이 주제인 것 같습니다.

복음은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고 하고,

묵시록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묵시록은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 있다고도 하는데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이제 하느님의 거처가 사람들 가운데 있다는 것은

이제까지는 하느님의 거처가 사람들 가운데 있지 않았다는 얘기가 되지요.

 

그리고 이것을 종합하면 새 하늘과 새 땅은 새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고, 그곳에 하느님도 거처를 잡으시겠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이제까지 왜 사람들 사는 곳에 있지 않으시고

왜 이제는 사람들 사는 곳에 거처를 잡으시겠다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주님께서 새 계명을 주시겠다고 하시며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말씀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종합을 하면 이제까지는 우리가 서로 사랑치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사시지 않았는데 이제는 우리 공동체가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지키는 새 땅과 새 하늘이 되었기에

거처하시겠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렇지요. 하느님은 사랑이시니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도 계시고,

사랑치 않는 곳은 하느님 나라가 아니고 천국이 아니지요.

당연히 서로 미워하는 곳이나 무관심한 곳은 천국이 아니고요.

 

그렇긴 한데 문제는 사랑을 해야 한다고 해도 사랑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주님께서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나도 사랑은 해야 한다 생각지만

사랑의 의지와 사랑의 능력이 내게 있느냐,

사랑하려고 하는지와 사랑을 할 수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제 생각에 우리 유행가에 사랑 타령이 그렇게 많고,

또 그런 사랑 타령을 하기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누구나 사랑은 하고 싶어 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실제로 들어가면 사랑의 의지가 없고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은

사랑의 두려움 때문이고,

사랑하는 것이 두려운 것은 자기를 내어주는 희생의 두려움 때문이며,

결국 희생을 할 수 있는 사랑, 내어주는 사랑이 내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를 포함하여 오늘날의 우리 한국 사람들을 보면

옛날 우리 어른들과 비교하여 사랑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요즘 한국에 와 있는 우리 조선족 동포와 비교해도 현저히 떨어집니다.


요즘 사랑을 하더라도 돈으로 하는 사랑은 좀 하지만

자기의 시간을 내어주고 몸으로 하는 사랑은 두려워합니다.

왜냐면 그렇게 하면 당장 스트레스가 쌓이고 병이 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옛날 어른들이나 요즘 조선족 동포들이 잔치 한 번 하는 것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지만 요즘 우리내 사람들은 두려워하는데

그렇게 한 번 하고나면 병이 나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청원자들이 들어왔는데 사과를 깎으라고 하니

사과를 갖고 씨름을 하고 결국 손으로 다 주물러버리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선배형제님이 보다 못해 당신이 깎아버리시는 거였습니다.

 

그때 저는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그런 것도 가르쳐야 한다는 시문기사가

났던 것이 생각났고 그래서 그때 제가 크게 깨달았습니다.

이런 형제들에게는 사과를 깎아주는 작은 사랑도 할 수 없고 두려운 것임을.

 

그러니 그럼에도 사랑을 하려하다가 상처받고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나면

심리상담을 받아야 하고 좀 더 적극적인 대처로 상담학을 배우느니,

심리학적인 소통의 방법을 배우느니 야단법석을 떱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머리의 사랑이 아니라

사과 깎는 것과 같은 생활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우리 삶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하기에는

참으로 우리의 사랑이 주님의 사랑에 멀리 있음을 겸손히 인정하며

작은 생활의 사랑부터 배우고 익혀야겠다고 다짐하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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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성체순례자 2019.05.23 11:06:10
    신부님의 말씀을 같은 전례시기에는 어떻게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성체순례자 2019.05.23 11:03:43
    작은형제회
    18년 부활 제5주일
    (쉬운 사랑을?)
    http://www.ofmkorea.org/121430


    작은형제회
    17년 부활 제5주일
    (어떤 존재인가?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
    http://www.ofmkorea.org/103648


    작은형제회
    16년 부활 제5주일
    (사랑의 의지와 열망이 더 중요해!)
    http://www.ofmkorea.org/88915


    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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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ofmkorea.org/77688


    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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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ofmkorea.org/62052


    작은형제회
    13년 부활 제5주일
    (새 하늘과 새 땅)
    http://www.ofmkorea.org/53114
  • ?
    홈페이지 풍경소리 2019.05.19 07:13:26
    그렇습니다. 신부님

    “애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예전에, 지금은 하늘나라로 떠나셨지만,
    노쇠한 어머니는 힘이 부치셨든지 혼잣말로
    “자식들이 지어미가 항상 젊은 줄로 안다”고 하셨던 말씀을
    무심한 마음으로 흘려들었던...
    어머니는 점점 나이가 들어 노쇠해지는데 철없는 자식들의 눈에는
    어머니는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라는 헛된 믿음을 믿고 있었던 거지요.
    이런 철없는 자식들을 남겨 두고 떠나야 하는 어머님의 심정을 오늘 예수님의
    말씀과 연관되어 떠오르는 철없던 지난날이 아쉽고 그립습니다.
    이런 제가 영성적이지 못하고 넘 인간적이다 싶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자식은 부모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지만
    부모는 자식을 끝까지 책임지고 또 부모의 기쁨은 자식들이 서로 우애하고
    지내는 것이 최고의 기쁨일 것입니다. 이런 부모님의 속마음을 헤아리는 자식은
    형제가 때론 마음에 들지 않아도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형제를 사랑하려고
    마음을 쓰게 된다 싶습니다. 이런 열린 마음의 확장으로 혈육을 넘어서는
    사랑이 될 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삶이 될 것이라 여겨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임을 믿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나를 못 믿겠거든 내가 하는 이 일을 보아서라도 믿어라.”하셨듯이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제 삶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인다움이 드러나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하면 늘 그 인간이 그 인간이라는 자괴감만 듭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냥 시간을 주시지 않는데..언제까지 괴로워만 하고 변하지는 않는가...
    자아가 죽어야 하는데 자아는 죽이지 않고 변하려고 하는 그것이 문제겠지요.
    이론으론 알겠는데 이론이 삶으로 드러나지 않으니까 솔직하게 말하면 저는
    진실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저를 보고 누가 믿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우울함에 빠질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우울은 어울리지 않으니까요.
    자신의 문제가 뭔지 모르는 것이 더 문제라는 말에 위로와 용기를 얻으며
    분연히 일어서야겠다는 다짐, 이런 제 다짐에 당신의 은총을 보태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해야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하기에는
    참으로 우리의 사랑이 주님의 사랑에 멀리 있음을 겸손히 인정하며
    작은 생활의 사랑부터 배우고 익혀야겠다고“ 하는 다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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