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겉으로 보면 세례자 요한은 헤로디아의 앙심 때문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헤로디아의 앙심怏心 때문이 아니라
세례자 요한의 양심良心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앙심과 양심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앙심과 양심 중에서 어떤 것을 더 따라 행동하는지 말입니다.
그러니까 헤로디아처럼 앙심에 따라서 행동하는지
세례자 요한처럼 양심에 따라서 행동하는지 말입니다.
여러분도 그러시겠지만 저도 양심에 크게 어긋나는 짓은 안 하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양심 때문에 세례자 요한처럼 거대한 불의에 맞서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예언하는 그런 대단한 양심의 소유자도 못됩니다.
앙심과 관련해서도 비슷합니다.
제가 인복이 많기 때문인지 제 주변에는 좋은 분들이 많아서
근본적으로 품고 있는 앙심이 없는 편이지만 앙심이 있다 하더라도
앙갚음하는 것을 제 양심이 허락치 않기 때문에도 앙갚음하지 않고
앙갚음하는 것이 제게는 더 큰 괴로움이기 때문에 못하는 편입니다.
우리는 보통 작은 행복을 꿈꾸는 사람을 소시민이라고 하는데
앙심 때문에 크게 나쁜 짓 하지 않고 크게 용기를 내지 않는 사람도
소시민이라고 할 수 있고 이런 면에서 저는 소시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앙심을 품지 않고 불의에 대해 크게 용기를 낼까요?
정의감이 투철한 사람이 불의에 대해 용기는 크게 낼 수 있을 것입니다만
사랑없이 정의감만 가지고는 앙심까지 품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만이 앙심도 없애고 양심에 따라 크게 용기를 내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세례자 요한이 앙심이나 양심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사랑 그것도 주님 사랑 때문에 순교한 거라고 결론 내리며 나눔을 마칩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바른말인가, 예언인가?)
http://www.ofmkorea.org/258216
18년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허망한 죽음이 아니다.)
http://www.ofmkorea.org/141815
17년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의미 있는 죽음을)
http://www.ofmkorea.org/110453
16년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오늘도 헤로디아 같은 사람 많고, 세례자 요한 같은 사람 많다.)
http://www.ofmkorea.org/92992
15년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진정한 입바른 말의 요건)
http://www.ofmkorea.org/81892
13년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운명이란 있다)
http://www.ofmkorea.org/55797
12년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선구자)
http://www.ofmkorea.org/36633
09년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마치 샴 쌍둥이처럼)
http://www.ofmkorea.org/3021
^^♡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