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는 이웃의 잘못을 옳게 고쳐주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그의 잘못을 보기보다는 그의 고통을 봐야 하고,
병의 증상을 보기보다는 병의 원인을 봐야 하며,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얘기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놓고
예수님과 반대자들이 보이는 반응도 이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겁니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예수님이 손이 오그라든 이의 고통을 봤다면
반대자들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고통은 아랑곳없고
오직 예수님이 안식일의 규정을 어기느냐, 어기지 않느냐만 본 것이겠지요.
그러니까 반대자들의 기준은 오직 안식일인 데 반해
예수님의 기준은 오직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사랑하시기에 다른 것은 보지 않고 오직 장애인의 고통만 보시고,
다른 사람이나 유력자들은 보지 않고 오직 고통받고 있는 장애인만 보시며,
그동안 늘 중심에 있던 유력자를 가운데 세우지 않고
그동안 늘 뒷전이나 구석에 있던 장애인을 가운데 세우십니다.
"일어나 가운데로 서라.“
그리고 모든 것의 기준이 사랑이기에
식별에 모호함이 없고,
판단에 어려움이 없으며,
행위에 망설임이 없고,
아무런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그리 복잡하지 않고 단순명료합니다.
해야 할 것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죽이는 겁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안식일뿐이 아닙니다.
언제나 해야 할 것은 사랑이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미움이며,
더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관심입니다.
아주 단순하고 분명하지 않습니까?
복잡할 것이 무엇 있습니까?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우두머리가 사라진 곳에 똘마니들이 저마다 잘났다고 설치다가
우두머리가 나타나면 똘마니들이 잠잠해지듯이
사랑이 없을 때 사랑하지 않을 핑계로 사람들이 법을 들먹이고
안식일을 들먹이며 사람을 어지럽고 복잡하게 만들지만
최고의 가치인 사랑 앞에서 다른 것들은 가치를 잃게 되겠지요.
모든 것을 평정하는 법을 배우는 오늘 우리이고,
사랑의 평정에 돋을새김을 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핵심을 찌르시는 주님)
http://www.ofmkorea.org/262175
18년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멋대가리도 맛대가리도 없는 사람)
http://www.ofmkorea.org/146489
16년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우리가 누군가를 가운데 세운다면)
http://www.ofmkorea.org/93178
15년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고통의 성사화)
http://www.ofmkorea.org/82268
13년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힘이 아니라 사랑을 한 가운데)
http://www.ofmkorea.org/56046
12년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참으로 멋있는 주님)
http://www.ofmkorea.org/38489
11년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가운데 서라!)
http://www.ofmkorea.org/5265
10년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일어나 가운데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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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년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최악과 극단의 가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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