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하느님은 참 무정하시고 무관하십니다.
저에게 무정하시고 저와 무관하십니다.
그렇게 느껴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정하신 저의 주님이십니다.
오늘 복음이 그것을 보여주십니다.
오늘 주님은 귀머거리를 따로 데려가시어
귀를 열어주시고 입을 열어주십니다.
제가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주님께서 그 귀머거리를 “따로” 데리고 가시는 것입니다.
은밀하신 주님.
그에 비해 하느님은 거칠 것 없는 분이십니다.
붙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습니다.
도대체 계시는 것인지, 우릴 사랑하시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애국가에서 가을 하늘 공활空豁하고 높고 구름 없다고 하는데
하느님은 그 가을 하늘,
아니 그보다 더 한, 겨울의 새벽하늘 같습니다.
겨울의 그 새벽하늘을 바라보면
너무도 아무 것도 없음이 깊고 커서 가슴이 시릴 정도이잖아요.
그런데 그 새벽하늘 아무 것도 없는 곳에 보름달이 둥그렇게 뜨고,
그 달이 새벽녘이면 앙상하고 마른 나뭇가지에 걸립니다.
그것으로 시린 하늘이 더 이상 시리지 않고
신비가 내림한 것이 되어 너무 감사합니다.
시린 하늘이 하느님이고,
나뭇가지에 걸린 달이 우리의 주님,
오늘 복음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귀먹고 그래서 말 못하는 사람을
사람들에게서 떼어 따로 은밀히 데리고 나가시고
그의 귓구멍에 손을 대시고 혀에는 당신 침까지 바르십니다.
우리는 신비의 하느님도 좋아하지만
그 하느님께서 한 번만이라도 내게 다가와
다정하게 그리고 따듯하게 손을 얹어주시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그리고 바람결에 말씀하시는 것도 좋아하지만
내 귀에 당신 손가락을 대시고 “열려라”하고
말씀하시는 그 소리를 실제로 듣기를 또한 바랍니다.
그렇게 귀가 열리면 제 입도 열릴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사람들처럼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그럴 수 없을 겁니다.
인내로서 "따로" 하늘이 열리는 날 ,구원의 날 ,마음이 녹아지는날, 기쁨환희의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