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교회의 그 수많은 순교자 중에서 아기 순교자들의 축일입니다.
아기 순교자들의 순교는 아기들의 선택에 의한 순교가 아닌 것과
아기들이기에 당연히 죄 없이 순교를 당한 점이 특징이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점을 부각시켜 나눔을 해도 좋겠지만 올해는
<하느님의 무서운 침묵>이라는 주제로 나눔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종종 하느님이 무섭도록 침묵을 하시는 것이 섬뜩하고
그래서 이런 분이 진정 우리의 하느님이신가 하며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의혹을 품었던 경험들이 있습니다.
나도 참으로 불행하게 그리고 고통 중에 컸습니다.
결혼하고 내 자식만은 고통 없이 행복하게 키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첫 자식은 나자마자 죽고 둘째가 태어났는데
난치성 질병으로 수술만 벌써 수십 번을 받았습니다.
고통과 불행이 끊이지 않고 더욱이 대물림하는 것이
너무 괴롭고 이렇게 내버려 두시는 하느님의 침묵이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공동체적으로도 그런 체험이 있고, 허다합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생각해봅니다.
제가 인간적으로 해석을 하면 과거 유대인들이
고리대금업을 하며 사람들을 수없이 피눈물 흘리게 한 것과
지금 유대인들이 팔레스티나 사람들에게 하는 짓을 보면 히틀러가
왜 그렇게 유대인을 학살했는지 이유가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하느님이 자기들의 하느님이라고 생각하는 유대인 입장에서는
하느님께서 학살 내내 왜 침묵하셨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지은 죄에 대한 하느님의 벌이었던 건가요?
다시 말해서 이것은 히틀러와 독일 사람들의 죄악일 뿐인가요?
아니면 유대인들이 지은 죄에 대한 하느님의 벌인가요?
유대인들 가운데 신앙적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오늘 아기들의 학살 경우에는
아무 죄가 없는데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닌
그저 헤로데의 권력 유지 욕심 때문에 저지른 학살이고,
하느님은 이런 인간의 죄악에 대해 침묵하신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무죄한 이에 대한 이런 인간의 죄악들에 대해
일일이 그리고 바로바로 개입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십니다.
만일 인간의 죄악들에 대해 일일이 그리고 바로바로 개입하신다면
우리 모두 죄인들이니 우리가 죄악을 저지를 때마다 하느님께서
개입하실 것이고 이때 우리는 자유의지가 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신 하느님은
죄악을 저지를 수 있는 자유의지도 주시고,
사랑을 실천한 것에 대한 상을 주시는 하느님은
죄악을 저지른 것에 대한 벌도 주시는데 다만
그 상과 벌이 즉각적이지 않은 것이 우리에게는 침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느님의 무서운 침묵은
자유를 주신 하느님의 무서운 인내이자 징벌의 유보입니다.
그리고 이 인내와 징벌의 유보는 회개할 시간을 주시기 위함이고,
그런데도 회개치 않으면 진리/이치/섭리에 따라 벌을 주십니다.
그것은 마치 알콜 중독자가 매일 술을 먹어도 하느님께서 일일이 막지 않고
내버려 두시고 그럼으로써 스스로 술을 끊을 수 있는 시간을 주시지만
스스로 끊지 않으면 언젠가 몸에 탈이 나게 하신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무서운 자유를 주신 하느님의 무서운 침묵은 사랑입니까? 아닙니까?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벌이 아니라 동참이다.)
http://www.ofmkorea.org/115796
15년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오늘도 무죄한 이들의 순교는 계속된다)
http://www.ofmkorea.org/85488
12년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죄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죽다!)
http://www.ofmkorea.org/46783
11년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영원의 바다에 낙엽처럼)
http://www.ofmkorea.org/5451
09년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http://www.ofmkorea.org/3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