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전교주일입니다.
선교의식을 고취하고
국내외에서 선교에 앞장서 애쓰는 선교사를 위해서 기도하며
우리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선교사가 되도록 촉구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전교 또는 선교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전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주교를 전파하는 것을 떠올릴 겁니다.
교세확장적인 전교이지요.
개신교 신자들이 선교에 열성인데
그들한테 신자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우리도 열성적으로 선교를 하고 가두선교도 하자는 식입니다.
전교주일의 진정한 의미가 이것일까요?
그런데 통계에 의하면 놀랍게도 지난 10여 년 간
그렇게 열심히 선교하는 개신교의 교세가 오히려 줄고
천주교는 조금 늘어났다고 합니다.
그 원인을 개신교 자체적으로 분석한 것을 보면
첫째가 교세확장주의이고,
둘째가 헌금강요이며,
셋째가 목사들의 영적인 자질 부족이고,
넷째가 영적인 갈증에 대한 적절한 응답 부족이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것이 제가 우리 천주교의 미래에 대해 염려했던 내용 그대로입니다.
개신교도 전교에 열성을 기울인 결과
10여 년 전까지는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이것을 본받아 우리도 적극적으로 전교를 해야 하고
가두선교도 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그러나 그렇게 교세확장을 한 개신교가 지금 쇠퇴하는 것입니다.
껍데기만 키웠을 뿐, 다시 말해서 교세만 확장했을 뿐
교회 안에 있어야 할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개신교 목사님 중의 한 분이 좋은 지적을 해주셨는데
교회 안에 하느님이 안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충격적입니까?
아니 계신 곳이 없이 어디든지 계시는 하느님께서
정작 교회 안에 안 계시다니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느님은 계시지만 하느님은 설교대에만 계시고
신자들의 실제 생활에서는 하느님께서 안 계시는 것입니다.
실천적인 무신론자들인 것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하느님은 감실에 처박아 놓고
신자들은 성당에서 자기들끼리 어울려 놀고
심지어 자기잇속을 채우는 장으로만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느님이 빠져 있으니 세속 집단과 다른 점이 없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교회 안에는
신자건 성직자건 하느님을 보여주고 만나게 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당신 전부를 바쳐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로 보여주는 사람,
제 2의 예수 그리스도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 없으니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이웃사랑이 있을 리 없습니다.
성당에 가고 교회에 가면
각박한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사랑을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습니다.
세 번째로 행사와 활동은 많지만 영성이 없습니다.
영성이 없으니 신앙의 깊은 맛을 모르고
활동을 열심히 하다 서로 다투거나
교회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면 쉽게 실망하고 떠나게 됩니다.
이상이 열심히 전교해도 신자 수가 주는 이유입니다.
이런 면에서 몇 년 전 전교주일에 교황님께서 하신 말씀은 중요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사랑이신 하느님을 사람들이 알게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제 그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선교사가 된다는 것은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모든 사람, 특히 더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의 필요를 살피기 위하여
몸을 낮추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듯이 사랑하려면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로지 하느님 안에 머물러야
인간은 하느님 사랑의 불꽃으로 타올라 세상을 불사를 수 있습니다.”
떡, 잘 들어 놓은 보험 .보기좋은 공동체 .
차지도 뜨겁지도 않는 은밀히 보시는 하느님 앞에 더욱더 정직하기를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들을 돌 보아라"
튼튼양,잘난양 아닌 길 잃은 한마리 어린양 돌보기 원합니다.
하느님의 사람은 아름다운 사랑을 해야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