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전례력으로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그래서 종말에 대해서 전례는 애기합니다.
개인의 종말과 세상의 종말.
모든 것에는 끝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끝을 자기가 내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마무리이고 완성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문제는 그 끝이 다른 누구에 의해서 날 때이고,
내가 원치 않는데도 누구에 의해 끝이 날 때입니다.
내가 원치 않은 때에, 내가 원치 않는 방식으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이 남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정말 싫어합니다.
내 인생의 작은 것 하나도 내가 원하는 대로 되길 바라지
내 원의와 다르게 다른 누구에 의해 좌우되길 바라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정략적인 이유로 싫어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것도 싫고
집안의 반대로 나의 사랑이 끝나는 것도 싫습니다.
그런 인생은 좌절이요 실패일 뿐이겠지요.
그러니 모든 것을 내가 시작하고 내가 끝을 낼 수 있다면,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의 Initiative가 내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것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어제는 오랫동안 벼르던 일, 형제님을 만나기 위해 강원도를 다녀왔습니다.
그 어머니 때문에 알게 되었는데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는 바람에
졸지에 제가 보호자가 되어 10여년 돌보는 분입니다.
그런데 정신이 온전치 않은 그분 입에서 뜻밖의 말을 들었습니다.
옛날에 자기 인생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서
성모상과 십자고상을 다 부숴버린 적이 있는데
그래서 자기가 지금 이런 벌을 받는 거라고 애기하며,
그러나 하느님께서 사람을 통하여 벌도 주시고 상도 주신다는 거였습니다.
자기가 이혼당하고 자식들과 헤어져 자식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것,
이런 것이 다 사람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벌주시는 것이고,
제가 당신을 돌봐드리는 것도 다 하느님께서 그리 하시는 거라는 겁니다.
그분 왈 “신부님이 뭣하러 저 같은 사람을 돌보겠습니까,
하느님께서 하시는 거지.”
그렇습니다.
내 뜻대로 안 되는 많은 것들이 나의 잘못과 누구의 탓이기도 하지만
나와 너의 인간적인 인과관계를 넘는 하느님의 뜻이 있음을 믿는 것,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고, 그걸 보는 것이 우리의 영적인 관상입니다.
종말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종말이란 하늘과 땅이 속절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내신 하느님께서 끝을 내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종말에서 파국을 볼 수도 있지만
주님께서 나타나 오심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죽음과 세상의 종말을 바라보며
역사의 주인이시며 내 인생의 주인이신 분이
모든 것을 시작하시고 끝을 내심을 보고,
하늘과 땅은 사라져도 주님의 말씀은 영원하심을 관상해야 하겠습니다.
모드것 ,모든일 들 주님의은총임을 더욱더 깨닫는 만큼
자유 그리고 비판보다는 사랑,영원하신말씀 앞에
온전히 굴복 되어 어지기를 기도 합니다.
사랑한 만큼 내가 있고
죽음도, 세상의 종말도 두렵지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