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대림은 주님께서 오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오시는 것을 기다림은 구원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는 의사를 기다리는 것은 치유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의사가 오면 분명 치유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주님께서 오시면 구원이 모든 이에게 선사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오실 길을 닦는 것입니다.
바룩서에서는 우리가 굳건하게 걸어갈 길을 하느님께서 닦는다 하였는데
루가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우리가 갈 필요가 없고
주님께서 오실 길을 우리가 닦아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길을 닦는 것은 세 가지 작업입니다.
골짜기 또는 패인 곳은 메우고
높은 산과 언덕, 즉 튀어나온 것은 깎아내며
굽은 길은 똑바로 하는 것입니다.
먼저 골짜기, 패인 곳을 메우는 것이 무슨 뜻인지 보겠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패인 곳, 곧 열등감을 치유하는 것이 아닐까요?
열등감은 장점도 있는데 자기의 단점만 보며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자신의 단점을 심히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등감이 있을 때 사람은 단점을 감추기 위해 숨습니다.
이는 마치 아담과 하와가 죄 짓고 죄를 감추기 위해 숨지만
감추지는 못하고 하느님만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단점만 보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숨기려하는 사람은
단점을 숨기려다 하느님만 볼 수 없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오셔도 꿩처럼 자기 눈을 가리고 있어 구원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골짜기를 메우는 것은 단점에 머물지 말고
단점까지도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에 자신을 여는 것일 것입니다.
다음으로 높은 산, 튀어나온 것을 깎아내는 게 무슨 뜻인지 보겠습니다.
우월감과 교만의 콧대를 꺾는 것이 아닐까요?
남과 비교하여 잘났다고 으스대는 사람은 사람에게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느님이 되어 하느님이 아예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러니 높은 산을 깎아내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소유와 능력을 자랑치 않고
그 모든 소유와 능력을 주신 하느님을 겸손하게 찬양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굽은 길을 곧게 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 보겠습니다.
그것은 비뚤어진 마음과 시선을 곧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어려서부터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누가 사랑을 베풀어도 의심하고
어려서부터 어른들의 부정적인 모습을 너무 많이 봐서
세상의 선과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언제나 어두운 면만 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랑이신 하느님, 좋으신 하느님과 등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굽은 길을 곧게 하는 것은 이런 비뚤어진 마음과 시각을 고치고
하느님께 대해서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조건 없이 사랑하시고 늘 좋으신 분이시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골짜기는 메우고, 높은 산은 깎으며, 굽은 길은 곧게 하는 회개이며
이렇게 길을 닦은 사람에게 구원의 하느님은 거침없이 오십니다.
강론을 준비하다보니 10년 전에 돌아가신 수사님이 생각납니다.
이 수사님은 어렸을 때 화롯불에 손을 데어 왼손이 불구가 되셨습니다.
그런데도 수사님은 일생 손 병신이 된 것을 숨기지 않으셨고
하느님과 부모님과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하느님께서 나 같은 손 병신을 고귀한 수도자 되게 하셨다고,
이런 손 병신을 외국 유학까지 하게 해 주셨다고,
지금 이 나이까지 먹고 살게 해 주셨다고 감사드리셨습니다.
이렇게 당신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좋으신 하느님을 만나셨기에
다른 사람도 늘 좋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수사님 옆에만 가면 모든 상처받은 마음, 열등감, 우월감,
왜곡된 마음이 다 치유되고 하느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오실 길도 같이 닦으신 것입니다.
우리도 오늘 이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온땅에 흰눈 가득히 동동 거리는 발걸믐
하느님 사랑에 푹 빠지기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