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이 말은 예수님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도 하는 말이고
장터 아이들뿐 아니라 남을 타박하며 제가 곧잘 하는 말입니다.
저는 제가 이기주의자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이것은 제가 너무 뻔뻔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의 이익을 위해 남의 희생을 당연시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남을 위해 얼마간 저를 희생할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저는 매우 자기중심적인 인물입니다.
내 뜻대로 모든 일이 되기를 바라는 그런 중증의 자기중심성에서부터
그럴 필요도 없는 것,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시비를 거는,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자기중심성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머리에 물을 들인 젊은이가 어떤 때는 맘에 들지 않고,
물건을 똑바로 놓지 않으면 왠지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머리에 물을 들이건 물건 똑바로 놓지 않건 그것 잘못 아니고
잘못일지라도 그것이 제게 무슨 상관입니까?
사랑 때문이 아니라면 제가 상관할 이유가 없지요.
그런데도 그저 제 입맛에 맞지 않기에 못마땅해 하고
더 나아가 제 입맛에 맞추라고 요구합니다.
더 문제는 변덕이 죽 끓듯 어떤 때는 싫고
어떤 때는 그게 뭐 문제냐는 듯 괜찮습니다.
이러함에도 저는 이런 저의 장단에 춤을 추라고 요구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실은 폭력입니다.
주먹을 써야만 폭력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는 것,
이것이 그 자체로 폭력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왜 남이 나의 장단에 춤을 춰야 합니까?
무슨 근거로 우리는 그것을 요구합니까?
반대로 나는 다른 사람의 장단에 춤을 춰줍니까?
어제는 오래간만에 허심탄회한 얘기를 형제들과 나눴습니다.
요즘 시대의 불행한 군상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요즘 사람들 다 자기만 힘들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자기 어려움에 무관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자기도 남에게 무관심하고,
모두가 그렇기에 모두가 외로우며
격려와 힘을 서로에게서 얻지 못하기에 모두 지쳐있습니다.
그러니 나의 장단에 춤추지 않는다고 남을 타박치 말아야 하고
남의 장단에 내가 춤추는 일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 장단에 나 혼자 춤추는 것은 더 우스꽝스럽겠지요?
그렇다면?
어울려서 같이 춤추고 노래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The Lord be wit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