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와 지향
2022년 1월 19일 수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마르 3,5)
은총에 협력하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떠넘긴 채 잠들지 말라고 나는 권고합니다. 그러나 부지런히 일한다 할지라도 여러분의 힘만으로 모든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게으름 피우는 것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당신 홀로 모든 것을 하지는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일을 하기를 바라지도 않으십니다.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다 맡겨 두지는 않으셨기 때문입니다.(참조 시펀 146,5; 이사 41,10 ; 50,7; 사도 26, 22)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성인 / 영적 글 묵상
말씀의 불꽃(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에 관한 이야기 / 프랑스와 까생제나-트레베디
우물을 파라, 사다리를 올라가라!
하느님의 말씀을 관리하는 자는 누구나 우물을 파서. 또 자기 청중들에게 원기를 되찾아줄 수 있도록 생수를 찾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내가 옛 어른들의 말씀을 설명하고 그 영성적 의미를 궁구하며. 율법의 너울을 걷고서 기록된 것의 우의적 의미를 밝히는 일을 한다면, 나 역시 우물을 파고 있는 셈이다. 만일 우리가 이사악의 종들이라면, 생수가 솟는 우물들과 원천들을 사랑하자. ( ... ) 생수가 솟는 우물들을 피는 일을 결쿄 중단하지 말자!( ... ) 우물의 물이 우리의 광장으로 흘러넘치도록까지 우물을 파자. 그리하여 거룩한 책에 대한 학문이 우리 지신에게만 만족을 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가르치며 깨우침을 주어서, 사람들뿐 아니라 짐승들도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하자.(64)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1월 영적 수련 성월 3주간 감사/찬양
금주간 성서읽기 요한 8-10장
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5. 그리스도인 일치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1부 고대 그리스도교
제 2기 : 312-604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부터 그레고리오 대교황까지
제 2절; 교의논쟁과 동방에서의 공의회들
서구의 신학 - 아우구스티노 및 의화논쟁과 은총논쟁
예로니모:
그는 347년경 달마치아 스트리돈에서 태어났고, 일찍부터 로마로 와서(354년경)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갈리아로 여행하는 도중 트리어에서 수도자 단체와 알게 되었으며. 수도생활을 할 결심을 하였다. 이퀼레이아에서 그는 한동안 금욕적인 친구틀과 함께 생활하였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여행하던 도중 병에 걸렸고, 그후 안티오키아에서 성서해석 연구에 전념하였으며,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배웠다. 375∼378년에는 칼키스 사막에서 경건한 은수생활을 하였다. 379년 안티오키아에서 사제로 서품되었고,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가 하는 강의들 듣고자 콘스탄티노플로 갔다(380/381). 그때 니사의 그레고리오와도 친해졌다. 그후에 다마소 교황이 그를 로마로 불렀다. 그는 382∼385년까지 교황 궁전에서 지냈고, 교황의 위임으로 라틴 성서의 원문을 수정하였다. 후의 이른바 불가타는 이 연구의 결과였다. 그는 교황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는 교황의 후계자로 결정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다마소의 사망(384.12.11) 후, 선거에서 무시되었다. 그는 금욕적인 견해 때문에 - 그는 로마 금욕주의자들의 중심인물이었다 - 또 로마 성직자들의 폐단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 때문에 인기를 앓고 있었다. 그는 로마를 떠나(385), 안티오키아를 거쳐 팔레스티나와 이집트의 여러 수도자 단체들을 찾아갔다. 마침내 386년 베들레햄에 정착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419년 아니면 420년 9월 30일에 사망하였다.
열심하고 부유한 파울라라는 여성이 로마로부터 그를 따라와 있었다. 그녀는 베들레햄에 세 개의 여자 수도원과 한 개의 남자 수도원을 건립하는데 도움을 주었는데. 남자 수도원은 예로니가 지도하였다. 여기서 그는 34년간에 걸친 끊임없는 활동을 통히여, 방대한 분량과 내용의 저술을 하였다. 그는 “의심없이 모든 라틴 교부 중에서 가장 학식이 많고, 당시의 최대의 석학”이었다. 주로 그의 홍분하기 쉽고 감정적인 천성과 신경질적인 기질로 인한 단점과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결하고 정직하고 완전히 수도자적인 신심의 이상으로 가득찼던 그리스도의 투사였다.(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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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회 한국관구
에페소 기도의 집
☨에페소 기도의 집은 순례와 피정을 통한 에페소 성모님 성지 보존과 중동평화와 난민을 위한 기도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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