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와 지향 ✝️
2022년 1월 26일 수요일
✝️ 교부들의 말씀 묵상☨ ✝️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루카 10,3)
이사야의 예언을 이루는 제자들
주님께서는 일흔두 제자를 뽑아 둘씩 짝을 이루어 당신에 앞서 보내셨습니다. 왜 둘씩 짝을 지어 보내셨을까요? 짐승들을 방주에 들일 때도 각기 정해진 수에 따라 그리고 부정한 짐승은 교회의 성사로 정결하게 하여 암수 짝을 지어 들여보냈지요(창세 7,2 참조) .... 짐승들은 서로 적대하며 상대를 잡아먹습니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떼를 위해서라면 이리들을 겁낼 줄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제자들을 이라 같은 세상의 먹이로가 아니라 은총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착한 목자의 이런 예지는 이리가 양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지켜 줍니다(요한 10,12-15 참조). 그분께서는 “늑대와 새끼 양이 함께 풀을 뜯고"(이사 65,25)라는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이리 떼 가운데로 양들을 보내셨습니다.
-암브로시우스-
✝️ 성인 / 영적 글 묵상 ✝️
말씀의 불꽃(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에 관한 이야기 / 프랑스와 까생제나-트레베디
우물을 파라, 사다리를 올라가라!
성경의 한 대목을 연구한다는 말은 바로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미드라쉬적 기능은 중요한 순으로 정돈된 일련의 도구들을 개입시킨다. 그런데 이 도구들은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가장 풍요롭고도 충만한 의미에 도달할 수 있도록 서로 연결되고 있다. 예컨대. 우리는 우선 문법과 문헌학이라는 도구들로써 시작하지만 고고학과 역사학이라는 도구들로써 탐구를 계속 진행해 나갈 것이다. 이어서 성경신학은 우리를 좀더 멀리 데려다 줄 것이며, 교의신학과 영성신학은 더 높은 지점으로 인도해 줄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비둘기의 날개"(시편 55,7)에 실려 침묵 안에서 완성되는 관조기도의 영역에까지 날아가게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이 대충 살펴본 우리 사다리의 살이다. 각 살들은 함께 어울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에 있다.(68)
✝️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1월 영적 수련 성월 4주간 성화/일치 ✝️
금주간 성서읽기 요한 11-13장
✝️ 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1부 고대 그리스도교
제 2기 : 312-604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부터 그레고리오 대교황까지
제 2절; 교의논쟁과 동방에서의 공의회들
서구의 신학 - 아우구스티노 및 의화논쟁과 은총논쟁
그레고리오 1세 대교황(590∼604):
그는 8세기부터 서방의 사대 교회학자 중 마지막 인물로 열거되고 있다. 그는 540년 경에 출생하였는데, 이 시기는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경계였다. 그는 원로원의 고급 귀족 가문 출
신으로, 572/573년에 로마시의 집정관이 되었다. 아버지 고르디이누스의 사망 후. 그는 화려한 세속적인 생애를 버리고(575년경), 로마에 있는 부모의 저택을 수도원으로 개조하고 안드레아 성인에게 봉헌하였다. 그후 그는 상속받은 시철리아의 소유지에 또 여섯 개의 수도원을 설립하고, 스스로 엄격한 금욕가로서 수도자적인 고요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579년에 이러한 고요한 생활을 떠나야 하였다. 교황 펠라지오 2세는 그를 교황대리 사절로 임명하여 콘스탄티노플로 보냈다. 그는 거기서 585년까지 지내야 하였다. 그는 비잔틴 황제 궁정에서 일어니는 분란 중에서도 수도자처럼 기도와 신학 연구에 전념하며 지냈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 그는 자신의 수도원으로 돌아갔으나 계속 교황의 조언자로 머물렀고, 590년에 교황이 사망한 후에는 정직하고 단호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그 후계자로 선출되었다.
역사는 그의 교황 명청에 “대”(大)라는 별명을 덧붙여 주었다. 실제로 14년 동안의 그의 재위 기간은 세계사적인 의의룰 지니고 있다. 보존되어 오는 854편의 서한은 그레고리오의 다방면에 걸친 내외적인 활동을 일별하게 하는 동시에 그의 고결한 인품을 인식하게 한다.
우선 그는 교회의 소유지의 능숙한 조직화와 수익 증대를 통하여, 게르만족의 침입과 민족 이동의 여파로 궁핍에 처한 주민들을 도울 수 있을 정도로 교회를 올려 놓으려고 노력하였다. 기아와 전염병이 이탈리아를 황폐화시키고 있었다. 사목적이고 사제적이고 사회적인 책임에서 교황은,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의 불운을 덜어 주고자 모든 것을 계획하였다. 즉, 그는 곡물을 나누어 주고, 이탈리아와 시칠리아에 있는 대농지의 농민들을 착취에서 보호하였다. 또한 비잔틴이 책임지는 것을 거부하고, 대신 로마시와 지방의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수호도 떠맡았다.
롬바르드족이 592년과 593년에 로마를 포위하였을 때는 평화적인 교섭으로 그틀을 퇴거시키는 데에도 성공하였다.(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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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회 한국관구
에페소 기도의 집
☨에페소 기도의 집은 순례와 피정을 통한 에페소 성모님 성지 보존과 중동평화와 난민을 위한 기도를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