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요한 복음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제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라고 하고,

최후 만찬의 복음에서는 "그때 제자 한 사람이 바로 예수 곁에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였다
."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가 요한뿐이었겠습니까?

오늘 같이 무덤에 달려간 베드로는 주님께서 사랑치 않으셨고,

열두 제자 중 다른 제자들은 주님께서 사랑하지 않으셨을까요?

다 사랑하셨어도 혹 배반자 유다 이스카리옷은 사랑하지 않으셨을까요?

 

혹 인간 중에는 자식을 편애하는 부모가 있을 수 있지만

주님은 그럴 리 없다는 것이 예수님 사랑에 대한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이 유일하게 얘기하는 예수께서 '사랑하신 제자'
예수님의
'사랑받은 제자'라는 표현은 어떤 의미이겠습까?

 

사랑을 주고받는 데 두 가지가 있고,

그래서 사랑을 받지 못하는 데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사랑을 받고자 하는데 주지 않아,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경우와

사랑을 주는데도 받지 않아,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후자의 경우 정확히 얘기하면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받지 않는 거지요.

 

그러므로 누가 사랑을 받는 것은 양쪽이 일치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을 주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받는 사람이 있을 때지요.

받고 싶은데 주고 싶지 않다고 하면 받을 수 없고

주고 싶은데 받고 싶지 않다고 하면 줄 수 없는 거지요.

 

그런데 사랑에는 기울기가 있습니다.

똑같이 사랑하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엄마와 자식 간에는 사랑의 기울기가 있습니다.

엄마의 사랑이 자식의 사랑보다 훨씬 크잖아요?

 

그래서 엄마는 자식을 사랑하는데 자식은 엄마만큼 사랑하지 않고,

심지어 엄마보다 이성이나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합니다.

이성이나 다른 사람의 사랑이 엄마의 사랑보다 못한데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은 내가 사랑하는 사랑을 받는 것이지

나를 사랑하는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줘도 내가 받아야지 받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느님 사랑을 받지 못함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서 받지 못하는 거겠습니까?

 

하느님 식의 사랑을 우리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느님 식의 사랑은 우리 식의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 식으로 사랑하는 것은 말로 표현하고 그래서 귀로 고백을 들으며,

손으로 만지고 몸으로 껴안으며 아무튼 감각되어지는 사랑입니다.

 

남녀 간에 '꼭 말로 표현해야 알아?'라고 하면

'말로 표현해야 할지!'라고 답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 요한도 '들은 것',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임을 강조하여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오신 분은 볼 수 없는 하느님이

볼 수 있는 분, 만져볼 수 있는 분으로 오신 거라는 얘기입니다.

 

프란치스코도 이 점에서 마찬가지였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볼 수 없는 하느님을 볼 수 있도록 와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너무도 감동과 감탄을 하며 감사드리며 그 사랑을 눈으로 보고 또 보고
싶어서 성탄 구유를 만들어 베틀레헴의 성탄을 재현하기까지 하였잖아요
?

 

그러나 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줘도 받아야 받는 것처럼

보여주셔도 봐야 보는 것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용서받은죄인 2022.12.27 06:13:01
    21년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br />(사랑에 머무는 사랑)<br />http://www.ofmkorea.org/458021 <br /><br />17년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br />(비관의 습관에서 벗어나야!)<br />http://www.ofmkorea.org/115740<br /><br />14년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br />(보기만 합니까, 보고 믿습니까?)<br />http://www.ofmkorea.org/73235<br /><br />12년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br />(<진성>이 이야기)<br />http://www.ofmkorea.org/46750<br /><br />11년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br />(사랑은 본래 그리움이다.)<br />http://www.ofmkorea.org/5450<br /><br />10년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br />(사랑 박사)<br />http://www.ofmkorea.org/4688<br /><br />08년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br />(사랑하는 만큼)<br />http://www.ofmkorea.org/1971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용서받은죄인 2022.12.27 06:12:32
    08년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br />(사랑하는 만큼)<br />http://www.ofmkorea.org/1971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용서받은죄인 2022.12.27 06:12:03
    10년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br />(사랑 박사)<br />http://www.ofmkorea.org/4688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용서받은죄인 2022.12.27 06:11:31
    11년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br />(사랑은 본래 그리움이다.)<br />http://www.ofmkorea.org/5450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용서받은죄인 2022.12.27 06:11:06
    12년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br />(<진성>이 이야기)<br />http://www.ofmkorea.org/46750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용서받은죄인 2022.12.27 06:10:34
    14년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br />(보기만 합니까, 보고 믿습니까?)<br />http://www.ofmkorea.org/73235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용서받은죄인 2022.12.27 06:10:04
    17년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br />(비관의 습관에서 벗어나야!)<br />http://www.ofmkorea.org/115740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용서받은죄인 2022.12.27 06:09:31
    21년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br />(사랑에 머무는 사랑)<br />http://www.ofmkorea.org/458021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용서받은죄인 2022.12.27 06:07:29
    신부님의 말씀을 같은 전례시기에는 어떻게 묵상하고<br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br />생각으로 올립니다.^♡^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17Nov

    11월 17일

    2021년 11월 17일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축일 - http://altaban.egloos.com/2248117
    Date2021.11.17 Category말씀나누기 By오바오로 Reply0 Views225 file
    Read More
  2. No Image 17Nov

    연중 33주 수요일-왜 악하게 되었을까?

    왜 그는 하느님을 냉혹한 분으로 볼 수밖에 없었을까? 셋째 종은 왜 하느님을 달리 보고, 다른 두 종과 달리 보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다 제 마음속에 있는 대로 보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니까 셋째 종의 마음속엔 냉혹함이 들어있겠지요.   이 지점...
    Date2021.11.1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3 Views869
    Read More
  3. No Image 16Nov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오늘 우리는 복음에서 자캐오의 변화를 보게 됩니다. 그는 세관장이었습니다. 세리들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세리들이 온갖 부정부패로 돈을 모았다면, 그들보다 세관장은 더 심한 죄를 지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면서도 로마의 앞잡이 역할을 했기...
    Date2021.11.1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1 Views222
    Read More
  4. 16Nov

    11월 16일

    2021년 11월 16일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 http://altaban.egloos.com/2248107
    Date2021.11.16 Category말씀나누기 By오바오로 Reply0 Views219 file
    Read More
  5. No Image 16Nov

    연중 33주 화요일-늙어서도

    오늘 마카베오서의 엘아자르는 나이 많고 풍채도 훌륭한 사람입니다. 게다가 인격도 고매하고 신앙심도 대단한 존재입니다. 이에 비해 오늘 복음의 자캐오도 나이는 많을 것이지만 키가 작아서 풍채는 볼 품 없고 당시 멸시를 받던 세관장입니다.   그러...
    Date2021.11.1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704
    Read More
  6. No Image 15Nov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오늘 복음의 배경은 예리코 근처입니다. 예리코는 예루살렘 가가이에 있는 도시로 예수님께서는 예리코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계십니다. 수난과 부활에 대한 세 번째 예고가 나오고 오늘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
    Date2021.11.1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191
    Read More
  7. 15Nov

    11월 15일

    2021년 11월 15일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 http://altaban.egloos.com/2248101
    Date2021.11.15 Category말씀나누기 By오바오로 Reply0 Views227 file
    Read More
  8. No Image 15Nov

    연중 33주 월요일-잠자코 있어서는

    오늘 복음은 중도 맹인이 다시 시력을 찾는 얘기입니다.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 지나가시는 주님을 만난 것을 보면 주님을 만날 것을 기대하지도 부러 찾아간 것도 아니지요.   그리고 주님을 만나지 않았으면 다시 시력을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요. ...
    Date2021.11.1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859
    Read More
  9. No Image 14Nov

    연중 제33주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마지막 날을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 세상의 마지막 날에 올 것이라고 사람들은 믿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사람의 아들이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모을 것이라고 말...
    Date2021.11.14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228
    Read More
  10. 14Nov

    11월 14일

    2021년 11월 14일 연중 제33주일 - http://altaban.egloos.com/2248094
    Date2021.11.14 Category말씀나누기 By오바오로 Reply0 Views230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296 297 298 299 300 301 302 303 304 305 ... 800 Next ›
/ 80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