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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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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수련소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십자가의 길을

수도원 밖에서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전 9시에 시작예식을 하고 저도 집을 나섰습니다.

 

작년에는 대전역에 나가 구걸을 하며

주님께서 수치와 모욕을 당하신 것을 기념코자 하였는데

올해는 주님께서 해골산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셨음을 기념하여

보문산을 오르는 것으로 십자가의 길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대신 저는 10여 Kg의 배낭을 메고,

그 배낭의 고통을 매일 제가 기도드려드리는 분들을 위해 봉헌하였습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길을 하면서 저는 다음과 같이 묵상을 하였습니다.

 

제 1처: 주님께서 사형선고 받으심.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것처럼

지금도 많은 사람이 신은 죽었다고 선언을 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선언을 하지는 않지만

내 안에서 하느님은 돌아가신 분으로 계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내 안에서 살아계신 적이 없으니 돌아가시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제 2처: 주님께서 십자가 지심.

싫어하는 것이 십자가이니 좋아하는 것은 십자가가 아니겠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진다면 싫어하는 것을 지는 것인데

그것은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지던지, 사랑으로 지던지.

그러나 억지로라도 진다면 비록 소극적일지라도 사랑은 사랑이지요.

 

제 3처: 주님께서 넘어지심

우리가 넘어지는 것도 둘 중의 하나일 겁니다.

걸려 넘어지거나 힘이 없어 주저앉거나.

살다보면 유혹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너무도 힘겨운 일로 인해 기진맥진하여 주저앉게도 됩니다.

주님도 그렇게 넘어지셨으니 우리가 넘어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고,

어쩌면 넘어지지 않음이 더 문제일 겁니다.

실수를 하거나 실패를 한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실수나 실패를 하지 않으려고 아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

미워하지 않으려고 아예 사랑을 하려 하지 않는 사람이 더 문제일 겁니다.

 

제 4처: 주님께서 어머니 마리아와 만나심

4처의 주님과 성모님을 묵상타보니 자연스레 저의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 지금 앓고 계시는 노환이

주님의 십자가 고통을 함께 나누시는 것임을 말씀드렸더니

고맙다시며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어려서부터 너무 고생을 많이 시키고

사랑을 많이 못줘서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갓난쟁이였을 때는 아버지가 병석에 누워계시어 저를 못 돌보시고

돌아가시고 나서는 어머니 혼자 밖에 일 하시느라 저를 못 돌보셨지요.

그것이 마음에 걸리셨던 것입니다.

있는 힘 다해 저희 6남매를 키운 것이 사랑인데,

그렇게 사랑하시고도 사랑치 못했다고 하십니다.

참 사랑은 사랑을 그렇게 다 하고도 다 못했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니 내가 더 많이 사랑한 것 같고,

그래서 손해 본 것 같은 사랑은 아직 사랑이 아니겠지요?

 

제 5처: 시몬이 주님의 십자가를 짊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주님 말씀하셨지만

제 십자가도 못 지는 저에게 시몬처럼 당신 십자가를 지라고 하십니다.

바오로 사도 말씀하시듯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우리의 몸으로 채우라고 초대하십니다.

뒤로 빼고 싶지만 예루살렘 입성 때 어린 나귀를 선택하셨듯이

저를 당신 십자가를 질 <또 다른 시몬>으로 뽑아주시니 큰 영광입니다.

 

제 6처: 베로니카 주님의 얼굴 씻어드림.

마르코복음에만 나오는 젊은이 얘기가 있지요.

주님께서 붙잡히시자 제자들이 다 도망치는데

사람들이 그를 붙잡자 그 젊은이는 알몸으로 도망쳤지요.

이 제자와 다른 제자들과 비교하면 베로니카는 얼마나 용기가 대단합니까?

뭇사람을 뚫고, 뭇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주님께 나아갑니다.

이런 용기는 용기라기보다는 사랑이라고 함이 좋을 것입니다.

 

제 8처: 주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

예루살렘 부인들이 주님을 보고 울고

주님은 너와 너희 가정을 위해 울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수난하시는 것이 바로 그들을 위한 것이니 말입니다.

저는 자주 이렇게 얘기합니다.

원죄는 아담과 하와가 지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지은 거라고.

자식의 모든 잘못은 부모의 무한책임이듯

우리 인간의 모든 죄와 고통도 다 하느님의 무한책임입니다.

우리 인간을 이렇게 만드신 분이 하느님이시니

주님께서 우리와 같은 죽음을 당하고 고통을 받지 않으실 수 없으십니다.

 

제 10처: 주님께서 옷 벗김 당하시고 초와 쓸개를 마시심.

제 생각에 육체의 고통보다도 주님께서 더 견디기 힘드셨던 것이

모욕과 수치의 고통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육체의 고통은 그저 통증이고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이 없기에

그래서 육체의 고통 때문에 먼 훗날 복수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수치와 모욕은 그 상처가 마음에 계속 남고,

그래서 용서치 않는 한 언젠가는 복수하려고 합니다.

육체는 기억치 않지만 마음은 기억하고 간직하기 때문이고,

순간의 통증 정도가 아니라

존재를 파괴한 그 악행을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 12처: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

가상칠언,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 가지 말씀이 있습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0)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6-27)

“목마르다.”(요한 19,30)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2)

 

복음마다 이렇게 다르니 어떤 것이 진짜 주님의 말씀일까 생각도 되고,

이 말씀 중에서 내 마지막 말은 어떤 것이 좋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아마 이 말씀,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가 좋을 것 같고,

아마 이 말씀을 하며 생을 마치지 않을까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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