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불을 때지 않는 수도원은 요즘 오히려 겨울보다 더 춥습니다.
그리고 요즘 수도원 안보다 밖이 더 따듯합니다.
그래서 며칠 전 밖에 나가서 햇볕을 쬐었습니다.
햇볕을 쬐러 나가는 순간 햇빛이 너무 눈부셔 눈을 찡그리게 되었는데,
순간 그리고 문득 햇볕은 사랑, 햇빛은 심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햇볕은 따듯해서 어머니 품같이 저를 감싸는 사랑이 느껴졌는데
햇빛은 어둠에 익숙한 우리 눈이 감당하기엔
너무 눈부셔서 일종의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큰 고통은 너무 눈부신 것이 아니라
너무 밝아서 모든 것을 훤히 밝히는 그 폭로성입니다.
이 폭로성이 심판처럼 느껴지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빛은 굳이 까발리거나 들추어내지 않습니다.
그저 비추고, 비추니 드러나게 되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굳이 더러움만 드러나게 할 의도가 없습니다.
아름다움도 드러나게 하고 더러움도 드러나게 합니다.
그럼에도 더러움이 드러난 사람은 빛이 더러움을 폭로한 것이 되고,
그 더러움이 단죄 받는 것이 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빛이 실은 심판과 단죄가 목적이 아닙니다.
병자가 의사에게 간다면 병을 고치러 가지
병에 걸렸는지, 어떤 병에 걸렸는지 그것만 알려고 가지 않습니다.
죄인이 사제에게 고백성사를 보러 가면 죄 사함 받으러 가지
단죄 받으러 가지 않습니다.
좋은 의사는 치료를 위해 진단을 정확히 내릴 것이고,
사랑의 사제는 아픔을 위로하고 죄의 뿌리를 찾아내어 고쳐줍니다.
그러므로 병자와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믿음입니다.
좋은 의사라는 믿음, 사랑의 사제라는 믿음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우리를 어둠에 머물게 하시려고 주님께서 오셨겠습니까?
주님께서 설마 우리를 멸망시키려고 오셨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믿기만 하면
빛이신 하느님은 어둠에서 우리를 건져내시고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햇볕만 사랑이 아니고 햇빛도 사랑입니다.
햇볕 사랑도 좋고 햇빛 사랑도 좋습니다.
오늘 한 번 햇빛을 받고 햇볕을 쬐러 나가봅시다.
햇빛과 햇볕을 쬐면서 민들레가 그러하듯
주님의 사랑을 한 번 피부로 느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