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과 함께 선택된 나의 아들 마르코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마르코 사도는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바오로의 제자였고
베드로의 제자인 아주 특별한 은총의 사도입니다.
이런 그였기에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에게 직접 들은 것을 가지고
우리 교회의 첫 번째 복음을 쓸 수 있었을 겁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의 편지를 볼 때
베드로 사도는 마르코를 아들과 제자로 여기며 특별히 아꼈습니다.
그런데 “선택된 나의 아들”이란 어떤 뜻이겠습니까?
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베드로 자신이 선택했다는 뜻 같기도 한데 정말 그런 뜻일까요?
그러니 우리는 여기서 누구에게 선택된 것인지,
무엇을 위해 선택된 것인지 한 번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마르코가 선택된 것은 일단은 베드로 사도에 의해서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베드로 사도는 자기가 마르코를 선택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고,
마르코 사도도 베드로 사도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자기를 선택하셨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왜냐면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면 자기가 선택된 뒤에 겪게 된
그 고단한 삶의 의미를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상 주님의 사도가 된 것이 남다른 것인데
그 남다름이란 모두가 원하는 그런 편안함 삶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느님을 찾게 되는 대부분의 경우가 이 남다른 고통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과 똑같은 고통을 당했다면
사람은 다 그런 것인가 보다 생각하고 하느님을 찾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자기만 고통을 당한다고 느껴질 때
“왜 내게 이런 고통이, 왜 나에게만 이런 고통이?”하면서
고통의 의미를 던지게 되고 하느님을 찾게 됩니다.
요 며칠 원로신부님께서 저희 집에 머무시며 피정을 하십니다.
식사시간에 간간히 당신이 살아오신 얘기를 하시는데,
어제는 당신이 광주 민주화 항쟁 때문에 겪은 것을 나눠주셨습니다.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다른 신부도 있는데 왜 내게?”라는
하느님께 대한 원망 때문에 더 괴로우셨답니다.
그때 깨달으신 것이 “Genelais”와 "Specialis"였답니다.
Generalis는 “일반적”이란 뜻이고 Specialis는 “특별한”이란 뜻이지요.
하느님께서는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 같이 햇빛을 주시듯
고통도 너나 가릴 것 없이 누구나 고통을 겪게 하시지만,
특별히 몇몇 사람에게 남다른 고통을 주기도 하시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위로와 힘이 되라고 그러시는 것이며
물론 특별하게 고통을 주시면서 각별한 사랑도 주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각별한 사랑으로 특별한 고통을 견디어낼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고통에서 승리하고 영광에 참여하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베드로 사도도 이렇게 얘기합니다.
“온 세상에 퍼져 있는 여러분의 형제들도 같은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잠시 고난을 겪고 나면, 모든 은총의 하느님께서,
곧 당신의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신 그분께서
몸소 여러분을 온전하게 하시고 굳세게 하시며
든든하게 하시고 굳건히 세워 주실 것입니다.”
이런 고통스런 은총을 체험한 사람은 이제 다른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아주 힘 있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도 마르코도 복음을 선포하도록 선택된 것입니다.
우선 주님의 수난과 영광에 참여하도록 선택된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복음을 선포하도록 선택된 것입니다.
우리도 각별한 사랑으로 고통스런 은총을 받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