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은 너무도 분명하여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겁니다.
그런데 믿는다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고
특히 청하는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면서 병이 났을 때 실제 믿는 것은 의사이고,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조언을 구하는 것은 하느님이 아닌 사람이며,
지치고 힘들 때 힘을 얻는 것도 하느님이 아닌 사람이기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기도하지 않으면서 믿는다는 사람의 경우 실은
주님의 가르침이 훌륭하여 그 가르침만 믿거나
하느님이 아니고 천주교를 믿는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무신론자가 있을 수 있고
심지어 수도원 안에도 무신론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기에 천주교가 실망스러워 천주교를 떠난 뒤에는
하느님을 믿지 않고, 수도원을 떠난 뒤에 신앙생활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면서 기도하지 않는 또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느님을 잘못 믿는 것이지요.
하느님을 나쁜 하느님으로 믿는 겁니다.
뱀이 아니라 생선을 주고 전갈이 아니라 달걀을 주는 인간 아비보다 못한 아비,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심지 않은 데서 거두는 모진 주인이라고 믿는 겁니다.
그러니 어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그 아버지가 아닙니다.
어제 기도 가르침에서도 그리고 오늘 기도 가르침에서도
하느님은 어느 인간 아비보다도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고
주님께서는 가르치시는데 그렇게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나쁜 하느님으로 믿거나
나쁜 하느님은 아니라도 좋은 것을 주지 않으시는 분으로 믿는 이유가 있습니다.
좋은 것을 주시는데 그것이 성령이라고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니 말입니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세상 아비처럼 원하는 것을 주셔야 하는데 성령을 주시니
악한 아비는 선하고 선한 하느님은 악한 하느님이 되시는 겁니다.
그러니 청하는 이는 받을 것이라고 하시는데
무엇을 청하는 나인가가 중요하겠습니다.
성령을 청하고 영적인 것을 청하는 나인가?
그 반대의 것을 청하는 나인가?
이것을 돌아보게 되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