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오늘 주님께서 부활한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시는데
제가 자주 하는 말이지만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사실 말이
되지 않는 말입니다. 이 세상 그 누가 하느님의 자녀 아닌 사람이 있습니까?
다 하느님의 자녀인데 그런데도
오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성숙한 하느님 자녀 또는 완성의 하느님 자녀라는 의미 말입니다.
사실 세례가 이런 의미입니다.
자기가 본래 하느님 자녀라는 것을 모르고 이 세상의 자녀로 살거나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지 않던 사람이 이제 자기 신원을 알게 되고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기로 새롭게 마음먹는 것이 세례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렇게 마음먹고 일평생 살았지만
이 세상 사는 동안 하느님과 세상 사이를 왔다 갔다 했는데
이제 죽어 다시 태어날 때는 진짜 새로운 하느님 자녀로 태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또한 이런 의미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육신 아버지의 자녀로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오로지 하느님의 자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의 경우, 아버지 베드로 베르나르도네의 아들이었다가
회개한 후 주교님 앞에서 옷까지 홀딱 벗어 돌려드리며 상속권을 포기할 때
이제부터 나는 하늘의 아버지를 자유롭게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선언했지요.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부자지간의 인연을 비롯하여
과거의 모든 인간적인 인연으로부터 훌훌 벗어난다는 의미입니다.
더 이상 누구의 아들딸이 아니고,
더 이상 누구의 엄마 아버지가 아니고,
더 이상 누구의 아내 남편이 아닙니다.
오늘 천사와 같이 된다는 표현도 있는데
천사처럼 더 이상 죽지 않을 뿐 아니라
천사처럼 더 이상 ‘누구의 누구’가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의 자녀라는 말입니다.
제가 이것을 확실히 깨닫고 실감하게 된 계기는 어머니의 죽음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머리로만 그렇게 생각했다는 뜻이지요.
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저는 어머니를 이제 제 어머니가 아니라
하느님의 딸로 놔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헤어지기 섭섭하여 간신히 작별의 손을 놓듯 여간 슬프고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그래야지만 어머니께서 하느님께 훌훌 떠나실 것이기에 그리했습니다.
그런데 신앙인이 아니어도 그런 말 있지 않습니까? ‘정 떼기’라는.
옛날 정이 많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 죽게 되면 갑자기 전과 달리 모진 짓을 하면
그것은 정 떼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했지요.
늙어갈수록, 아니 죽어갈수록
우리도 정 떼기를 해야겠습니다.
하느님의 완전한 자녀가 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