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는 아침에 일어나니 방금 꾼 꿈 때문에 기분이 나빴습니다.
악몽까지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기분을 아주 더럽게 했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선교 협동조합 일이 훌륭하다며 치하하는 차원에서
대통령이 저를 현재 용산이 아닌 청와대로 식사 초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전에 종교 지도자 초청 때 수도자 협의회 회장 자격으로 초대되어
청와대에서 그 양반과 식사한 적이 있는데 그 격식 차리고 경직된 분위기 때문에
다시는 이런 식사하지 않겠다고 할 때의 느낌이 꿈에서 재현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저는 ‘내가 그까짓 치하에 감격할 줄 알았냐?’라며
끈질긴 초대를 거절하다가 꿈을 깼는데 꿈을 잘 꾸지 않는 제가,
혹 꾸더라도 생각나지 않는 제가 그 꿈이 생생히 기억나 기분이 무척 나빴습니다.
사실 저는 정치를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관심도 적지 않으면서도
정치인들을 나쁜 놈들이라며 많이 무시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러는 가장 큰 이유가 저의 독선적인 교만 때문이지만
복음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그들을 판단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아 모든 민족을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이 심판의 대상에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이라고 예외가 없고 오히려 더 혹독합니다.
세상에서 떵떵거리던 사람들이 오히려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는 의미입니다.
왕 중의 왕이신 주님의 뜻을 세상의 왕들이 받들어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며 더 엄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뜻을 받드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해 어떻게 하시는지 그것을 따라 하는 것이고,
그것은 가난하고 병들고 감옥에 갇히고 헐벗은 이를 형제로 대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찬가처럼 권세가 있는 자는 자리에서 내치시고,
미천한 이는 끌어올리시는 주님의 그 사랑과 정의입니다.
그런데 이런 주님의 뜻을 받들어야 하는 것은
세상의 왕들 뿐 아니고 우리도 그래야 하고,
이 축일을 지내는 더 큰 이유도 실은 이것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서 하느님을 믿고 주님을 왕으로 받들겠다고 하는 우리는,
더더욱 주님의 뜻을 받들어 이 세상에서 왕직을 수행해야 하겠지요.
그리스도교를 믿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예언직과 사제직과 함께
왕직을 수행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할 때의 바로 그 왕직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왕이 되려고 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당신을 왕으로 세우려고 할 때 오히려 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그리스도 왕 축일을 우리가 지내는 것도
당연히 주님께서 원하신 것이 아니고 우리가 원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주님을 왕으로 받들겠다고 교회 안팎으로 선포하는 것이요.
우리 왕이신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왕직을 수행하겠다는 결심을 봉헌키 위함입니다.
세상 왕들은 백성들 위에 군림하지만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모범을 보여주신 것처럼 서로 발을 씻어주고,
서로 여기애인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여주애인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여기애인(女己愛人)이 나처럼 이웃을 사랑하겠다는 뜻이라면
여주애인(如主愛人)이란 주님처럼 이웃을 사랑하겠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오늘 복음의 주님께서 가난한 이가 바로 당신이고,
가난한 이에게 해준 것이 바로 당신에게 한 것이라는 가르치신 바지요.
이 가르침을 명심하고 이 가르침대로 살기로 결심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