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관복음에서 안드레아 사도는 저평가된 분입니다.
형 베드로는 주님 교회의 반석이 되었지만
그는 같이 첫 제자였으면서도 그리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지요.
그리고 주님의 중요한 순간들,
곧 타볼산의 거룩한 변모 때와
죽은 소녀를 살리실 때와
겟세마니에서 피땀 흘리며 기도하실 때 주님께서는 첫 제자들 가운데
형 베드로와 제베데오의 두 아들은 동반하시고 안드레만 빼놓으셨지요.
그렇다면 그것은 안드레아가 4등 안드레아였다는 표시이거나
안드레아가 아예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는 표시가 아닐까요?
물론 주님께서 그러셨을 리 없을 테지만 그렇더라도 안드레아가
인간적으로는 자신만 주님 사랑 밖에 있다고 느끼지 않았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제베데오의 두 아들이 베드로를 제치고
주님 좌우에 앉으려고 하자 다른 제자들이 불쾌해했다고 하는데
이때 안드레아만 예외였을 리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주님 사랑에서 자기는 밀렸다고 인간적으로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공관복음의 안드레아는 존재감이 별로 없지만,
그러나 요한복음의 안드레아는 제법 중요한 존재입니다.
스승 세례자 요한과 함께 오실 메시아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고,
지나가는 주님을 세례자 요한이 가리키며 메시아임을 알려주자
주님을 따라가 주님이 계신 곳을 보고는 형을 주님께 데려갑니다.
그러니까 안드레아는 제일 먼저 주님을 따른 존재요,
형을 주님께 인도하고 천거한 존재인데,
이런 면모는 요한복음에서 두 번 더 발견됩니다.
그리스 사람들이 주님을 찾아왔을 때 그들을 주님께 데려가고,
빵의 기적 때 오병이어를 가진 아이를 주님께 데려가 만나게 합니다.
그리고 이밖에는 요한복음에서도 안드레아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4등의 존재로 있고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 존재인 것이
실은 안드레아가 자기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저는 오늘
이런 존재와 이런 사랑을 돋을새김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제가 이렇게 없는 듯 있는 사람이지 못하고,
존재감 없이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안드레아처럼 소리 없이 대단한 사랑을 하지 않고,
빈 깡통처럼 요란한 사랑을 제가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에 비해 존재와 존재가 만나게 하고,
사랑이 사랑을 만나게 하는 안드레아의 사랑은 얼마나 대단합니까?
아무튼, 4등으로라도 늘 주님과 함께 있는 것,
두드러진 활약은 못하더라도 사람들을 주님과 만나게 하는 것,
이것이 실은 겸손이 밑받침된 대단한 내공의 사랑이라는 것을
안드레아 사도를 통해 배우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