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주님이라고 하는 사람 가운데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고,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씀인데,
그것은 하느님 뜻의 실천 여부에 달렸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주님’하고 하느님 뜻을 실천하지 않으면 못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 저는 이런 묵상이 되었습니다.
‘주님, 주님’ 하지만
그저 이름을 부르는 주님이 있고,
진짜 당신은 저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주님이 있다고.
그리고 그저 이름으로 주님을 부르는 경우는,
진짜 귀찮을 정도 주님을 부르고는
그저 주님을 부려 먹고 시켜 먹기만 하는 거라고.
‘엄마’하고 부르고는 밥 줘,
‘엄마’하고 부르고는 돈 줘,
‘엄마’하고 부르고는 옷 좀 다려줘 뭐 이런 식입니다.
말은 주님이지만 전혀 ‘나의 주인님’이 아니고
실제로는 ‘나의 종’처럼 주님을 부리는 겁니다.
우리의 청원기도 상당수가 그렇습니다.
‘주님’이라고 부르지만
‘주님,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하며
결국 나의 요청 또는 요구를 들어달라고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강요이기에 주님께서 안 들어주시면 삐지고 원망하는 기도인데
오늘 주님께서는 그런 기도하지 말고 오히려 실천하라고 하시고,
실천 이전에 하느님이 진정 나의 주님임을 고백하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이 진정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면,
나는 진정 하느님의 종이 될 것이고,
내가 진정 하느님의 종이 되면
뭘 하든 내 뜻대로 하지 않고 주 하느님 뜻대로 할 것입니다.
그럴 때 나는 하느님 나라의 진정한 백성이 되고,
하늘에서와 같이 나에게서도 하느님 나라가 이뤄질 것입니다.
이제 나에게서 하느님 나라를 이룬 우리는
땅에서도 하느님 나라가 이뤄지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사야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가게 너희는 성문들을 열어라.”
우리는 하늘나라의 성문을 여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하늘나라 문지기 또는 성문지기입니다.
그래서 시편 118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너희는 열어라, 정의의 문을!
그리로 들어가서 주님께 감사드리리라.
주님의 문이 바로 여기 있으니 의인들이 이리로 들어가리라.“
그저 주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대한 나의 진실한 고백과 실천으로
하늘 문이 나에게도 열리고 사람들에게도 열리게 하라고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성문지기 소임을 주심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