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촉진자',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2023년 12월 24일 대림 4주일
고인현 도미니코 ofm
주님의 성탄을 맞이하는 대림 마지막 주간에 복음은 마리의 믿음의 순종이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잉태하게 했음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이 마지막 주간에 마리아의 믿음을 본받아 일상안에서 믿음의 삶을 살도록 초대받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에게서 주님이 잉태되는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의 신비를 믿음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순수한 믿음으로 모든 인간적인 사고나 경험을 초월하여 있는 그대로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맡기고 그분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 지기를 바랬습니다.
순수한 믿음은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겸손이라고 하는 두가지 열매를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겸손은 자신의 생각에서 나오는 판단을 중지하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 지기를 바라는 순종의 마음입니다.
순수한 믿음의 길은 우리의 영적 여정이 어디 와 있는지를 염려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이 받은 선물이 나의 것보다 더 좋다 판단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믿음을 많이 가질수록 그만큼 하느님과 하나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의 신비를 깨달으려면 믿음이 점점 더 깊어지고 높여져야 합니다. 이성적으로 관념적으로 이해했다 하여 믿음이 싹트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살아계시며 우리를 지지하신다는 자신의 산 체험만이 신앙을 눈뜨게 합니다.
믿음을 가질 때 인간은 그 믿음이라는 옷으로 몸을 보호할 수 있게 됩니다. 믿음은 온갖 다른 덕보다 뛰어나서 강력하고 교활한 악에 대항할 수 있습니다.
믿음에는 항구한 인내심이 수반합니다. 항구한 인내심이란 모든 덕의 극치와 완성이며 공로의 어머니요 상급의 수단입니다’라고 베르나르도 성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또 그는 항구한 인내심을 버리면 순종이나 친절로 은총을 얻지 얻지 못합니다’라고 덧붙여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의 척도는 기도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위해서 시간을 갖고 중대한 것을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무엇이든 보람이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위해서는 시간을 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위해서 시간을 내지 않는다면 하느님이 그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이 대림주간에 마더 데레사의 기도를 상기하고자 합니다.
“침묵의 열매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열매는 기도입니다. 기도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사랑의 열매는 봉사입니다. 그리고 봉사의 열매는 침묵입니다”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2월 4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묵시 15-22장
<생태 영성 주간> 고요와 침묵과 절식을 통한 단순한 삶
일요일 성체의 날
<세계 도처에 일어난 성체의 기적(마리아 헤젤러)>
그리스도교 신자로 개종한 중국인 아 록
신 대영제국, 비스마르크 군도 -1905년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선교를 맡고 있는 코우프(Couppe) 주교가 그의 어린 양들에게 성사를 베풀어 주기 위하여 지치지 않고 주교구의 여러 섬들을 돌아다니던 도중에 이 두 형제의 농장을 방문하였다.
그는 이 섬에서 얼마 되지 않은 가톨릭 신자에게 미사를 집전해 주고 또 성사를 베풀어 주기 위하여 하룻밤을 묵었다. 아카이는 그의 친절한 호의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 다음 날 아카이는 거룩한 미사성제를 마치고 난 후에 주교에게 세례를 받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그 주교는 그의 소원을 들어 주고 자신의 체류기간을 늦추어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가톨릭 교리와 신앙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언젠가 아쿤에 의해 개종을 하였던 가브리엘 초우(Gabriel Chow) 는 친구의 농장에 선교의 배가 들어왔다는 것을 듣고는 즉시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자신의 두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곧바로 배를 타고 왔다. 아카이는 그 두 어린아이에게 대부가 되어 주었다.
아카이는 변함없이 자식을 14명이나 둔 가정의 가장 모범적인 크리스찬 가장으로서 살아갔다. 세 아들과 세 딸은 커서 주님을 선교하는 소명을 받들었다. 아카이 자신도 그가 세례를 받은 날부터 40년 동안 성스러운 영성체를 받았다. 마음의 탐욕을 제어하고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에게는 어떠한 길도 멀지 않았으며 어떠한 향해도 길지 않았다.
아 록에게는 이러한 모든 일이 커다란 기쁨이었다. 그는 죽음에 임할 때까지 평신도 사도직으로서의 소명과 그리고 성스러운 제단의 성체를 흠숭하는 열심한 신자로서 일하였다.
그러나 1939년 1월 25일 아기예수는 아 록에게 영원한 기쁨과 행복을 주기 위해 그를 하느님의 나라로 데리고 갔다. 아 록은 환희의 미소를 지으며 아기예수를 따라갔다. 이 날은 그를 기념하는 본명축일이었다.
중국인들은 아 록의 선행을 잊지 않고 뉴잉글랜드에 있는 전원 도시 라바울(Rabaul)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라바울은 심하게 파괴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격심한 피해속에서도 아 록의 동상만은 아무런 손상도 없이 보존되었다. 일본의 포로수용소에서 돌아온 중국인들은 그 동상 앞에서 자신들도 사도의 직분을 열심히 하겠다고 서약하였다. 오늘날 그의 학교와 자선사업은 더욱 증가되었다. 그리스도와 같은 그의 생활은 이 폐허에서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아간 사람으로 추앙되고 있다.(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