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아기로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을 빛으로 얘기하면서
빛과 어둠에 관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니까 지금 어두운 것은, 빛이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빛이 이 세상에 와 있는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랍니다.
빛과 어둠의 이치는 사실 간단합니다.
어둠은 빛의 반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둠은 빛이 없는 상태로 있는 것입니다.
이는 어둠은 빛의 반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빛의 반대는 없고 빛의 반대말도 없습니다.
어둠은 빛의 반대가 아니라 밝음의 반대이고,
어둠이나 밝음은 그저 빛의 상태들일 뿐이며
빛이 없는 상태가 어둠이라면 밝음은 빛이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어둠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 내가 빛이 없는 상태에 있기 때문이고,
빛이 이 세상에 왔는데도 나만 빛이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은
그 빛이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고,
깨닫지 못하기에 거부하거나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요한복음 얘기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모두 빛을 비추시고,
빛에서 오신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도 모두를 비추는 참빛이신데
그러나 선한 사람은 그 빛을 선으로 깨닫고 사랑하고 받아들여 어둠이 없지만
악한 사람은 그 빛을 악으로 깨닫고 미워하고 받아들이지 않아 빛이 없습니다.
그러니 빛을 선으로 깨닫는 선한 사람과
같은 빛을 악으로 깨닫는 악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이는 탈렌트의 비유에서 한 탈렌트 받은 사람이
주인을 주지도 않고 거둬들이는 모진 분으로 이해한 것과 같습니다.
그에게는 한 탈렌트가 선도 은총도 아니고
한 탈렌트 주신 것이 사랑도 아니었으며
그러니 한 탈렌트 주신 분은 모진 분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이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라고 힘주어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빛을 비추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빛을 비추지 않는 빛은 참빛이 아닙니다.
그러니 아무리 빛을 증언하는 세례자 요한일지라도 참빛이 아니고
선택적으로 그러니까 편애하여 빛을 주는 사람도 참빛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들을 빛으로 생각했던 사람에게는
참빛에 대한 오해가 형성되어 있을 것입니다.
몇 번 믿었다가 배신당한 사람이 믿을 놈 하나도 없다고 하는 것처럼
빛으로 희망을 걸었던 인간들에게서 실망을 여러 차례 한 사람은
이 세상에 참빛이 왔고 모든 사람을 비추는데도 그것을 믿지 못합니다.
예수님도 믿지 못할 놈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아니고 참빛이 아닙니다.
빛이, 빛이 아니라고 믿는 데는 방법이 없습니다.
선이, 선이 아니라고 믿는 데도 방법이 없습니다.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 믿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믿음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확신까지 하면 더더욱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요한처럼 빛과 선과 사랑을 증언해도 그는 어둡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에게 주님 성탄을 축하 드리며
빛으로 오신 주님이 앞길을 밝혀주시고,
평화와 기쁨을 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