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처음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그 말씀은 하느님이셨습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
하느님이신 그 말씀이
앞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
그래서 우리 가운데에서
어떻게 살아가실 것인지
요한복음은 그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합니다.
그 말씀은 육이 되셨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고
우리말 성경은 번역하지만
원어는 말씀이 육이 되셨다고 표현합니다.
우리와 똑같은 살을 가진 존재이지만
그 살은 곧 요한복음 6장에서
우리를 먹여 기를 생명의 빵으로
그 표현이 바뀝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살을 내어주십니다.
즉 말씀의 육화는
우리에게 당신의 몸을 내어주실 것을
이미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당신의 것을 이 세상에 모두 내어주실
각오가 되어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돌을 빵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빵을 배불리 먹기를 원하던 사람들은
결국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멀리 계시면서
우리와 상관없이
그저 우리가 원하는 것만 들어주시는
그런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그렇게 하실 수도 있지만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것은
우리 가운데 머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돌을 빵으로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살을 빵으로 내어주십니다.
우리 가운데 머무시는 것을 넘어서서
이제는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려 하십니다.
사랑하면 그가 하는 말을 따라하고
그가 먹는 것을 같이 먹으며
모습조차도 그와 닮아갑니다.
하느님의 육화는
우리와 똑같이 육을 가진 존재가 되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표현한 사건입니다.
사랑하면 붙어있고 싶지
떨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빵의 모습으로 당신 살을 내어주시면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싶어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복음은
그 사랑을 받아들인 사람들과
맞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음을
이야기합니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죄도 많고
나쁜 마음도 많이 있다고 표현합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부족합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하느님을 맞아들이지 않는 결과로
사랑을 거부하는 결과로
가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하기에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기에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것입니다.
그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 가운데 머무르려고 하십니다.
그 사랑의 따스함에
오늘도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