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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Sep
2023년 9월 28일 목요일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
오늘의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 2023년 9월 28일 목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루카 9,9) 그리스도...
Date2023.09.28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0 Views90
주님께서 새 사제 비오 신부님의 발 앞에 등불 되시어 밝게 비춰주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비오 신부님 앞날이 주님의 축복으로 찬란히 빛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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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작은형제회 김찬선 신부인데 오늘 첫 미사를 봉헌하는 새 사제의 수련장이었던 인연으로 오늘 첫 미사 강론을 기쁘게 하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우리 비오 사제를 저희 수도회에 보내주시고,
지금까지 기도해주시고 사제가 되기까지 온갖 도움을 주시고,
첫 미사를 드릴 수 있게 해주신 본당 신부님과 모든 신자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첫 미사 강론을 준비하며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무엇이냐 하면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 주님을 등에 태웠던 어린 나귀입니다.
주님께서는 입성 준비를 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곳에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어린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는 것을 곧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을 풀어 끌고 오너라.”
저는 비오 사제가 바로 이 어린 나귀처럼 끌려온 것 같습니다.
아직 아무도 태운 적이 없는 비오 사제가 다른 누구도 아니고
주님을 등에 태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 나귀는 아무도 그리고 한 번도 태운 경험이 없을 뿐 아니라 아직 나약하고 허약하여 자기 한 몸 제대로 건사하기도 힘든 상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왜 굳이 경험도 없고 힘도 없는 어린 나귀를 택하셨을까?
그것은 주님께서 수난의 현장으로 들어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의 임금이 되시기 위해 가는 길이었다면 준마를 택하셨겠지만 죽으러 가시는 데는 준마가 어울리지 않고 어린 나귀가 제격이기 때문일 겁니다.
아마 준마였다면 입성 때 사람들이 주님을 열렬히 환영하고 찬양할 때 말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환호하는 줄 알고 날뛰거나
착각이 아니라면 주님을 등에 업고 날뛰었을 겁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사제가 주님을 등에 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등에 업고 신자들 위에 군림하고 날뛰고 주님께 가야 할 환호를 자기가 가로채곤 합니다.
그래서 오늘 신명기의 주님도 주님의 사람 예언자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내가 말하라고 명령하지도 않은 것을 주제넘게 내 이름으로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예언자가 있으면 그 예언자는 죽어야 한다.”
그러나 여러분은 새 사제가 이럴까 봐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새 사제는 진정 주님의 어린 나귀입니다.
덩치는 커도 어린 나귀처럼 약하고 이리 떼 가운데로 가는 양처럼 양순합니다.
새 사제가 수련받을 때 안동댐서부터 부산까지 낙동강 길을 걸었습니다. 그때 4대강 개발이 한창일 때라 생태 교육 차원과 하나의 목표를 정하고 힘든 길을 함께 가는 교육과 체험 차원에서 걸었지요. 가깝고 쉬운 길은 혼자 갈 수 있고 혼자 가는 것이 편하지만 멀고 힘든 길은 혼자선 엄두도 못 내고 엄두를 내더라도 중간에 포기하기 쉽기에
주님의 십자가 길을 따르는 힘든 길은 같이 가야 하는데 그런 교육 차원이었지요.
그런데 7월 말 8월 초 한여름에 낙동강을 걸으려고 하니 수련자들 가운데 홀쭉이와 뚱뚱이 두 형제가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저녁 먹고는 배낭에다가 10kg 정도 되는 책을 넣고는 묵주 기도를 하며 한 시간 정도 운동장을 돌았는데 덕분에 저도 같이 돌았습니다.
새 사제는 사제가 되고도 이럴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자신이 약할 때 강해지는 사제가 될 것이고, 그리스도의 힘이 머무르도록 더없이 기쁘게 약점을 자랑하는 사제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될 때 오늘 주님처럼 힘과 권위를 지니게 되지요.
오늘 복음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율법 학자들과 다른 권위라고 하면 어떤 권위입니까?
그것은 율법의 권위가 아니라 사랑의 권위이고, 법으로 군림하는 권위가 아니라 사랑으로 섬기는 권위이며, 무엇보다도 악령이나 더러운 영까지 말씀 한마디로 제압하는 성령의 권위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주님께서는 세례 때 성령을 받으셨고,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가 악령의 유혹을 받으셨지만, 그러나 마침내는 악령을 이겨내셨지요.
그때 주님께서 받으신 유혹은 돌을 빵으로 만들고픈 유혹이나 세상의 임금이 되고픈 고작 그런 하찮은 유혹이 아니었습니다.
식욕이나 명예욕이나 권력욕은 우리가 당하는 유혹이고, 주님께는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드러내고픈 것이 유혹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사탄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리 해봐라 저리 해봐라 했던 거지요.
그 사탄이 오늘도 주님에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라고 합니다.
당신 정체를 폭로할 테니 자기를 괴롭히지 말고 물러가라는 협박을 하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주님을 모르는 자가 악마가 아니라 잘 알면서도 무슨 상관이 있냐며 관계를 거부하는 자가 악마이고, 구원하러 오신 분을 괴롭히기 위해 오셨다고 믿는 자가 악마입니다.
어쨌거나 주님께서는 오늘도 성령의 힘으로 악령을 제압하시는데 이것이 진정한 권위이고 영적인 권위입니다.
율법이 아니라 성령과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이신데
이런 주님을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가 오늘 우리의 관건입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오늘 신명기의 말씀처럼 듣는 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악령처럼 알기만 하고 관계나 추종은 거부하는 자가 될 것인가?
우리가 악령처럼 주님 말씀을 듣고도 추종하지 않는다면 이런 말을 들을 것입니다.
“그가 내 이름으로 이르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내가 직접 추궁할 것이다.”
여러분 가정안에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