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촉진자',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2024년 1월 31일 수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마르 6,5)
‘하실 수 없었다’라는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가?
‘할 수 없었다’라는 말의 뜻 가운데 하나는 단순히 인간 의지의 한계를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께서 나자렛에서 어떠한 기적도 행하실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불신 때문이었습나다(참조: 마태 13,58; 마르 6,6). 치유를 위한 본질적인 것이 양쪽에게 요구되는데, 환자에게는 믿음이요 치유자에게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상대방 없이 일방적으로는 ‘하실 수 없었습니다’ 곧, 기적들을 행하실 수 없었습니다. 치료의 경우도 그렇지만 이런 일은 윤리적 변화에서도 나타납니다. 의지의 한계와 관련된 비슷한 본문으로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수는 없다”(요한 7,7)와 “너희가 악한데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겠느냐?”(마태 12,34)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불가능’이라는 은유는 의지로 말미암은 자유로운 거부를 뜻합니다.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하느님께는 가능하다고 말하는 대목들에도 똑같은 개념이 적용됩니다(참조: 마태 19,26; 마르 10,27). 사람이 두 번 태어날 수 없다고 말하는 대목(요한 3,4 참조)과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갈 수 없다(참조: 마태 19,24; 마르 10,25; 루카 18,25 )고 말하는 대목도 눈여겨보십시오. 하느님께서 친히 뜻하셨다면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가로막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모든 것 말고도 우리가 지금 살펴보듯이 완전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악하실 수 있다거나 존재하실 수 없다고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실재가 존재할 수 없다거나 이 곱하기 이가 십사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아버지께서 행하시지 않는 것을 아드님께서 행하시기란 불가능하며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아버지께서 지니고 계신 모든 것은 아드님의 것이고, 아드님께서 지니고 계신 모든 것은 아버지께 속하기 때문입니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2
창조 – 밖으로 흐르되 안에 머물기
이러한 안의 신학과 이러한 가장 내밀한 곳의 하느님은, 엑카르트가 말한 대로. “산책을 위해 밖으로 나가지” 않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액카르트는 겉사람과 속사람을 구별한다.
“겉사람은 옛사람, 지상의 사람, 이 세상 사람입니다. 그는 날마다 늙어갑니다. 그의 끝은 죽음입니다 ... 반면에 속사람은 새사람, 천상의 사람입니다. 하느님은 그 사람 안에서 빛을 발하십니다.”
하느님의 심오한 말씀은 속사람에게만 발설된다. 그 말씀이 발설될 때, 일치가 일어난다. 자아와 시간, 경쟁과 이분법 등의 장벽은 표면이나 겉사람의 의식에서만 존재할 따름이다. 속사람 안으로 시간이 틈입하지 못하는 곳에서, 이미지가 전혀 이채를 발하지 못하는 곳에서, 하느님은 마음껏 뛰놀고, 상호 작용하고, 창조한다. 혹은 프로이트가 말한 대로, “이드(ld) 안에는 시간 관념에 대웅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서 모든 창조가 일어난다. 바로 여기서 하느님이 우주 전체를 창조한다. 시간이 정지되고, 영원이 시작된다. 또한 여기서 아버지는 완벽한 말씀과, 하느님의 자녀이자 말씀인 우리 자신을 낳는다. 모든 시간이 정지된 이 가장 내밀한 절정의 단계에서 새로운 창조가 일어난다.(111)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월 4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요한 11-13장
<생태 영성 주간> 고요와 침묵과 절식을 통한 단순한 삶
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 2부 중세 그리스도교
제 3기 : 1050 ∼ 1300년
중세 중기 교회의 전성
제 2절: 그레고리오 개혁과 성직 서임권 논쟁
성직 서임권 투쟁:
후에 서임권 논쟁은 교황권과 황제권 사이의 이 원리적 대립을 결정지을 기회와 호기가 왔다. 젊은 왕 하인리히 4세는 밀라노의 주교 선거에 있어서(1072), 교황의 금지를 거슬러 왕으로서의 처리권을 행사하였다. 1075년 로마의 사순절 교회회의에서 그레고리오는 속인에 의한 성직 서임을 더욱 엄격히 금지하고, 교구를 점유하는 데 있어서의 모든 권리를 그에게서 빼앗을 것임을 파문의 위협하에 통고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제국의 질서가 의거하고 있던 오토 제국교회 체제의 전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인리히는 교황의 이 포고령에 개의치 않았다. 1076년 1월 보름스의 시노드 - 제국의회 - 에서 극적인 장면이 벌어졌다. 즉, 하인리히는 그레고리오의 혁명적인 요청에 분개한 제국 주교들을 선동하여 교황을 거스르게 할 수 있었다. 그레고리오 7세가 폐위를 선고받은 것이다.
즉시 그래고리오는 하인리히에게 파문으로써 응수하고, 그의 신하들에게 왕에 대한 충성 선서 의무에서 면제시켜 주었다. 왕을 교회 공동체 밖에 두게 한 이 파문은 왕권의 비신성화를 공공연하게 만들었다. 세계는 (초조해서)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러나 하인리히의 지지자들은 급속히 사라져 버렸다. 1076년 10월 트리부르에 모인 제후들은 1년 이내에 교황으로부터 파문 해제를 간청하여 받아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왕위를 잃고 새 왕이 선출될 것이라는 최후 통첩을 왕에게 내놓았다.
이리하여 하인리히는 1076/1077년 겨울에 카노사로 참회여행을 떠났다. 그는 처자와 소수의 수행원만을 데리고, 큰 위험을 무릅쓰고 알프스를 넘어 갔다. 그 사이 교황도 독일로 여행하기 위하여 로마를 떠나 있었다. 하인리히가 아펜니노 산맥의 북쪽 비탈에 있는 카노사에 나타나 참회복을 입고 성문 앞에서 3일 동안 입장 허가를 기다리고 있을 때(1077.1.26∼27), 교황은 변경백(邊境伯)인 마틸다의 견고한 성내에 체재하고 있었다. 하인리히는 자신의 영세 대부인 클뤼니의 수도원장 위고와 마틸다의 중재로, 독일 제후들과의 분쟁에서 교황의 중재적 판결에 따를 것이라는 조건하에 그레고리오로부터 사죄를 받았다.(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