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서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오늘 열왕기는 솔로몬의 청원 기도로서
듣는 마음과 분별 능력을 주십사고 청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주십사고 청할까 생각해봅니다.
나도 듣는 마음을 주십사고 청해야 할까?
분별의 능력을 청하는 것은 안 좋지 않을까?
그리고 듣는 마음보다 사랑을 주십사고 청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러면서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는 것은
여러 면에서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우선 불교의 가르침과 비교하여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불교에서는 분별심이나 분별지를 안 좋은 것으로 얘기하지요.
이 분별심과 분별지에서 악이 발생하고 불행이 시작된다고 얘기하지요.
지어낸 얘기겠지만 인도에 어떤 사람이 갔을 때 한 식당에 들어갔더니
종업원이 바닥을 닦던 걸레로 식탁을 닦더랍니다.
그래서 어떻게 걸레로 식탁을 닦느냐고 따지니
그 종업원은 아직도 당신은 구별하느냐고 오히려 어리석다고 하더랍니다.
유달리 더러운 것과 깨끗한 구별하는 사람,
그래서 결벽증이 있다고 할 정도로 조금의 더러움도 못 견디는 사람은 불행하지요.
그리고 다 좋은 사람이 행복하지
이것은 좋고 그래서 저것은 싫은 사람은 불행합니다.
그러니 이런 선악 분별심은 청할 것이 못 되고,
솔로몬이 청하는 선악 분별심이 의미하는 것이 뭔지도 잘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선악은 하느님의 선과 악입니다.
자기중심의 선악 곧 내가 좋아하는 선과 내가 싫어하는 악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선과 하느님께서 싫어하시는 악을 말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주십사고 청하는 선악 분별력은 바로 하느님의 선과 악을 분별하고,
나의 선과 악이나 세상의 선과 악과도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비근한 예로 우리는 마약은 주십사고 청하고 약은 쓰니 싫다고 하잖습니까?
솔로몬은 또한 듣는 마음을 주십사고 청합니다.
이것 참 훌륭한 자세입니다.
우리는 흔히 들으려고는 하지 않고 들으라고 하고,
통치자들은 더 백성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데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달라고 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백성의 소리를 들으려는 마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하느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마음이지요.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귀가 너무 얇아서 하느님의 음성은 듣지 않고,
그저 인간의 이런저런 소리를 분별없이 듣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래서 유혹하는 소리와 달콤한 소리에 하느님의 선악 분별력을 잃게 되고
백성들의 소리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거나
그 반대로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사람들의 소리를 가려듣지 못하게 됩니다.
하느님을 잘 믿는 사람 그리고 기도를 잘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소리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줄도 알고,
기도 안에서 사람들의 소리를 분별할 줄도 아는 사람이겠지요.
아무튼 듣는 마음을 달라는 솔로몬의 청원에서
위에서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밑에서 들으려는 겸손과
백성의 소리를 들으려는 사랑을 느끼며 이런 솔로몬에게서 배우는 오늘 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