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말씀나누기
김레오나르도 2024.08.28 05:21

연중 21주 수요일

조회 수 674 추천 수 0 댓글 2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연중 21주 수요일-2020

 

제 생각에 진짜 불행은 자기가 불행한 줄 모르는 불행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불행한 줄 모르거나 더 나아가 행복한 줄 알고

계속 그렇게 살다가 결국 마지막에 가서야 불행을 키워왔음을 알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 세상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잡고,

호의호식에 떵떵거리던 권력자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지만

그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불행한 줄 모르고 살면 불행합니다.

 

저는 불행한 줄 모르고 행복한 줄 아는, 이런 행복을

<행복 착각> 또는 <착각 행복>이라고 이름을 붙여봤습니다.

 

그런데 사실 대부분의 인생이 이런 착각을 하며 삽니다.

이런 착각이라도 없으면 살기가 힘드니까 착각을 하는 것이요,

불행하지 않은 것만으로 만족하는 소박한 행복을 살겠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런 불행은 불행일지라도 소박한 불행일 것입니다.

속으며 살고 속아서 산다는 사람에게는 인생이란 어차피

이런 소박한 행복과 불행을 살다가 가는 거지 뭐 있겠습니까?

 

그래서 주님께서도 이런 불행에 대해서는

오늘 바리사이에게처럼 그렇게 거창한 불행 선언을 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만일 그러신다면 소 잡는 칼로 파리 잡으시겠다는 식이 될 테니 말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불행 선언을 하시는 것은 소박한 불행이 아니라

남을 불행에 빠트리고 예언자를 죽이는 어마어마한 죄악의 불행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비판하시는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조상들이 죽였던 예언자들 무덤을 화려하게 꾸미며

자기들은 조상들과 다르다고 착각하지만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오늘 주님의 말씀인데

사실 옛 예언자가 아니라 지금의 예언자,

그것도 나에게 예언을 퍼부어대는 예언자를 좋아할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본래 예언자란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하느님의 사람인데,

하느님께서 예언자를 왜 파견하시겠습니까?

하느님 계명을 잘 따른다면 왜 파견하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예언자는 하느님 계명을 어기는 자들,

특히 종교 사회 지도자들에게 파견되는 것이고,

그래서 그들의 잘못을 꼬집으니 좋아할 리 있겠습니까?

 

다윗과 같은 사람이라야 즉시 그것을 하느님 말씀으로 받아들이며 회개하지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하느님 말씀이 아니라

개뼉다귀처럼 여기는 예언자들이 하는 개소리라고 여기지요.

 

사실 우리 삶에도 예언자들이 많습니다.

내가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하면 예언자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예언자처럼 거룩하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 눈에 그야말로 개뼉다귀같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예언자를 받아들일 마음이 있고,

그런 사람을 고마워할 채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개뼉다귀같은 사람이 하는 쓴소리가 개소리가 아닌

하느님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 곧 예언이 될 것입니다.

 

저도 머리로는 이것을 압니다.

그리고 억지로 그 예언을 받아들이기는 하고,

적어도 예언자를 죽이지는 않지만

그러나 마음으로부터 그것을 예언으로 받아들이고

그 사람을 고마워하는 데까지 아직 미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 바리사이들을 보면 이런 점을 반성합니다.


너무 늦게 일어나 새로운 강론을 올릴 수 없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용서받은죄인(성체순례자) 2024.08.28 05:51:26
    신부님의 말씀을 같은 전례시기에는 어떻게 묵상하고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20May

    2024년 5월 20일 월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
    Date2024.05.20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0 Views86
    Read More
  2. No Image 19May

    성령 강림 대축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평화의 인사를 하십니다. 이어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숨을 불어넣으시는 모습은 창조의 순간에 아담에게 하시는 모습과 똑같습니다. 숨을 통해 흙덩이가 사람이 된 것처럼 ...
    Date2024.05.19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77
    Read More
  3. No Image 19May

    성령 강림 대축일-우리 공동체에도 성령께서 내려오실까?

    지금 우리 공동체에도 성령께서 내려오실까? 내려오시면 우리는 성령으로 가득 찰까?   이것이 이번 성령 강림 대축일에 저에 대해 하는 성찰이고, 제가 우리 공동체들에 던지는 질문입니다.   나는 성령께서 나에게 내려오시길 바랄까? 우리 공동체는 성령께...
    Date2024.05.19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6 Views526
    Read More
  4. No Image 19May

    2024년 5월 19일 성령강림 대축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
    Date2024.05.19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0 Views128
    Read More
  5. No Image 18May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우리는 오늘 요한복음의 마지막 부분을 들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를 이야기합니다. 이어서 복음사가는 그가 이 일을 증언하고 기록한 사람이라고 전합니다. 요한복음은 처음부터 증언이라는 주제로 시작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증언으로...
    Date2024.05.1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79
    Read More
  6. No Image 18May

    부활 7주 토요일-상관하지 않아 방해 받지 않는

    “그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였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오늘로써 부활 시기를 끝내는 우리 교회는 사도행전과 요한복음도 끝부분을 들려줍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베드로 사도와 ...
    Date2024.05.1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2 Views511
    Read More
  7. No Image 18May

    2024년 5월 18일 토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
    Date2024.05.18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0 Views88
    Read More
  8. No Image 17May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은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이어지는 말씀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양들을 돌보...
    Date2024.05.1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83
    Read More
  9. No Image 17May

    부활 7부 금요일-사랑하느냐고 주님께서 물으신다면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당신을 세 번 배반한 베드로에게 세 번 사랑하는지 물으십니다. 그런데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압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모르시고 우리 마음도 모르시기에 이런 질문...
    Date2024.05.1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4 Views572
    Read More
  10. No Image 17May

    2024년 5월 17일 금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
    Date2024.05.17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0 Views71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81 82 83 84 85 86 87 88 89 90 ... 800 Next ›
/ 80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