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냅니다’
+평화를 빕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목소리가 낮습니다.
그래서 노래도 잘 못 부르고, 글 같은 것도 잘 읽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 이것 때문에 국어시간이나, 음악시간이 싫었습니다.
국어시간에는 7일이면 그럼 7번 니가 한번 읽어 보자 이러면서 책을 읽게 시키는 것도 싫었고,
음악시간에 가창시험 보는 것도 싫었습니다.
국어 시간, 음악 시간만 싫은 게 아니라 더 나아가 국어 선생님, 음악 선생님도 싫어졌습니다.
생각해보면 국어 선생님도, 음악 선생님도 잘못한 게 없고,
국어 시간도, 음악시간도 나에게 잘 못한 게 없었습니다.
저는 저의 목소리가 낮은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국어시간에도, 음악시간에도 저를 드러내야 되기 때문에 이 시간들이 싫어졌던 것입니다.
저는 저의 부족함으로 인해 모든 것들을 왜곡되게 보았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여지는 헤로데의 모습이 저의 모습과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첫 부분을 보면 헤로데 영주는 당황합니다.
근데 그 누구도 헤로데 영주에게 당황할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소문을 듣고 스스로 당황한 것입니다.
소문을 듣고 왜 당황했을까요?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헤로데는 자신의 부족함, 잘못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이 헤로데의 잘못, 약점을 콕 찌르니까 요한이 밉게 보이고 싫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헤로데는 결국 요한의 목을 베어 버립니다. 요한을 죽이면 자신의 잘못이 감춰질 줄 알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헤로데의 모습을 보면 요한의 목을 베고 나서도
자그마한 소문에 귀를 기울이며 당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왜 헤로데는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려 했을까요?
또 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려 하는 것일까요?
자신에게 흠이 없고, 티가 없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흠을 감추고, 티를 감추는 것입니다.
이렇게 감춤으로써라도 자신이 흠없는 사람이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입니다.
결국은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받고 싶고, 존경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서 자신의 약점들을 감추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우리가 우리의 약함, 부족함, 잘못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해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헤로데처럼 행동합니다.
자기 잘못을 감추고, 자신의 약함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싫어하고, 미워하고, 만나지 않고, 이렇게 살아갑니다.
저는 우리가 우리의 약함,부족함,잘못을 어떻게 마주해야하는지
성 프란치스코의 모습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세 동료들이 쓴 전기 39항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수도복을 벗고는 베드로 형제에게 목에 끈을 매단 채 군중들 앞으로 끌고 가도록 하고,
또 다른 형제는 재 한 접시를 가지고 강론대 연단 위로 올라가서 머리 위에 뿌리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형제는 눈물을 흘리며 시키신 대로 그를 군중들 앞으로 끌고 나왔습니다.
거기서 모든 이들 앞에서 성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저를 거룩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지요.
많은 이들이 저를 보고 세속을 포기하고 수도회에 들어와 형제로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서 이번에 아파서 고기와 국을 먹었음을 고백합니다.”
모든 이가 감동받고 그분에 대한 연민 때문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거룩한 사람은 합당하고 꼭 필요했음에도
저렇게 겸손하게 스스로 고백하는 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육체의 본능에 따라 살아왔고 또 살아가려는 불상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하고
가슴을 치며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우리도 세상이 아니라 사부님을 닮아야 합니다.
세상은 감추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부님은 있는 그대로 나의 부족함을 드러내십니다.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사람들에게 내 보일 때
사람들은 나를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향해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 앞에 있는 그대로이지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 하느님 앞에서 벌거벗은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드러냈던 사부님처럼,
우리도 그 모습을 드러내며 살아보는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