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죽음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더욱 궁금증을 갖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도 죽음 이후의 삶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아니 복음의 표현을 빌려 오자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잘 믿어지지 않기에 (루카 16,31), 죽음 이후의 삶은 우리에게 그저 막연한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죽음 이후의 삶,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한 마디 덧붙이십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루카 20,38)
마태오 복음이 전하는 성탄 복음에서 마태오는 예수님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뜻은 복음에 나오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마태 1,23)입니다. 즉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생명을 얻는 그 순간부터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그 말은 즉, 우리가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육체가 없어져서 우리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신다는 뜻일 것입니다. 즉 우리가 생명을 받음으로써 맺은 하느님과의 관계는, 우리의 죽음으로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루카 30,28)
물론 알지 못한다는 것에 사람은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 낯을 가리는 것처럼, 처음 가는 도로에서는 조심스럽게 운전하게 되는 것처럼, 모르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거리를 두게 되고, 신경을 곤두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상황은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사전 지식을 줄 수 없고, 더욱이 피할 수 없기에, 가장 극한의 상황이고, 극한의 두려움을 가져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신앙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해 주셨던 것처럼, 죽음 이후의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해 주실 것임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처음 운전을 하고 가는 도로일지라도 그곳을 잘 아는 사람이 옆에 함께 하고 있다면 낯선 길이 그리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죽음 이후의 막연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할 때, 그 길이 막연한 두려움으로만 다가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성경이 이야기 하는 것처럼, 우리는 죽음 이후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고 바라볼 것이기에, 죽음은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겨울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년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삶의 마지막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해의 마지막이 또 다른 한 해의 시작인 것처럼, 그리고 그 한 해의 시작에 우리가 매년 주님의 오심을 기억하는 것처럼, 우리 삶의 마지막 다음에도 우리는 주님을 새롭게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함이 충만함으로 다가오는 한 달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