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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김명겸요한 2014.11.02 18:35

위령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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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마태 25,13)

 오늘 주님께서는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서 준비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은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여분의 기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처녀들은 여분의 기름 없이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가지고 있던 기름도 바닥이 나서,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고, 다시 돌아온 다섯 처녀들은 결국 혼인 잔치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또한 우리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에게 죽음이 있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문제는, 비유에서의 신랑이 언제 올지 모르는 것처럼, 우리의 죽음이 어느 순간, 어떻게 찾아올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죽음을 잘 준비하라는 의미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인가요?

 유교의 영향으로 우리의 문화에 있어서 죽음은 멀리해야 할 것이 되었습니다. 무덤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아닌, 산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게 되었고, 우리 동네 안에 화장터가 들어온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 되었습니다. 살아있을 때는 그토록 곁에 있고 싶어 하지만, 죽고 나서는 더 이상 곁에 머물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곁에 있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입니다. 또한 죽음 앞에 있는 사람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그것은 고통을 안겨줍니다. 고통을 멀리하고 싶기 때문에 죽음을 멀리하고 싶지만,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우리는 언젠가는 죽어야 할 존재이기 때문에, 죽음을 멀리할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죽음과 우리와의 관계는 가까이하기도, 멀리하기도 어려운, 그런 관계입니다.

 그러나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죽음이라면,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통해서 수 없이 경험해야할 죽음이라면, 죽음과 친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은 죽음에 대해서 감정이 무뎌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죽음은 멀리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프란치스코가 표현한 것처럼, 형제 죽음으로서 받아들여야 할 그 무엇입니다.


 죽음이 인간이 약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가장 강한 표현이라면,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앞서서, 인간의 약함, 인간의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과학이라는 이름을 통해서 인간의 고통을 없애려고, 적어도 줄이려고 노력하지만, 고통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고, 단지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마비시키는 방법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죽음이 있다는 것은, 인간이 신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과학이 인간의 죽음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고통 역시 우리가 진정한 인간, 진정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경험하는 것이라면, 과학이 인간의 고통 역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기에 고통 속에서, 그러한 고통을 주시는 하느님을 원망하기보다는, 내가 진정한 하느님의 피조물임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엄청난 고통 앞에서 그것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또한 고통에서 하느님이 원망스러운 이유 중 하나는, 고통이 하느님의 벌로 느껴지고, 하느님께서 나를 버리셨다고, 나를 더 이상 보고 계시지 않는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 고통 속에서도 당연히 우리와 함께 하시고, 당신의 십자가를 지고 우리 고통의 길에 동참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고통은 하느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심을 깨달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도 인간의 고통, 인간의 죽음을 원하지 않으신다고 구약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지전능하신 분이 그렇다면 왜 인간의 고통, 인간의 죽음을 만들었느냐고, 전지전능하다면 인간의 고통, 인간의 죽음을 없앨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물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인간의 머리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고통이나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는, 고통과 죽음을 통해서 하느님의 함께 하심을 깨닫고, 그렇게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에게 부활이 있다는 것인데, 그 부활은 죽음을 통해서만 우리가 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은,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부활로 이어졌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죽음은, 우리의 부활로 넘어가는 통로, 지금은 어렴풋하게 느끼는 하느님을 얼굴을 맞대고 볼 수 있는 기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오늘의 일상 속에서,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통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서 느끼는 약함들, 약점들을 하느님과 함께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고통 받고, 하느님과 함께 죽고,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느님과 항상 함께 한다면, 죽음이 갑자기 다가와도 형제 죽음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마태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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