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
더러운 영들이 주님더러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하고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입을 다물라 하시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더러운 영들이 주님더러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지식의 과시일까요, 믿음의 고백일까요?
그 답은 뻔합니다.
믿음의 고백이라면 더러운 영이 아니고 깨끗한 영이겠지요.
그렇다면 더러운 영이 어찌 예수님의 신성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그것은 더러운 영도 능력은 영적인 능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적인 존재이고, 영적인 능력을 가졌기에 신성을 알아보는 것이니,
그것을 뭐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거나 좋은 것으로 착각할 필요 없습니다.
사랑의 능력이 대단한 것이지 영적인 능력이 대단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알아볼 뿐 사랑치 않고,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오는 것이 하나도 반갑지 않습니다.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는 그들에게 하늘이 다가오는 것은
축복이나 구원이 아니라 재앙이고 파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더러운 영이 주님 앞에 와서 무릎을 꿇는 것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역시 좋게 이해할 수 없지요.
그렇다면 이는 비굴하고도 교활한 양동작전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더러운 영은 주님 앞에 온 것부터 마음에서 우러나와 온 것이 아니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도 진정한 승복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자기가 있는 곳에 오지 않으셨으면 자기가 찾아갈 리가 없지요.
자기를 쫓아내려 오신 주님을 마지못해 마중 나온 것일 뿐입니다.
무릎 꿇은 것도 더 힘센 분 앞에 왔으니 그 힘에 굴복한 것이기도 하고,
거짓 복종으로 주님의 준엄한 명령을 피해볼 속셈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주님을 공격합니다.
당신의 정체를 내가 아니 나를 가혹하게 쫓아내시면
당신의 정체를 사람들이 다 알도록 까발리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로서의 삶을 철저히 사시려는 주님께서 자기를 내쫓으시면
자기는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것을 들추어내겠다고 협박하는 겁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실 때
악령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렇게 또 저렇게 해보라고 하며
이미 주님을 공격했던 수법입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그 입 다물라고 일갈하십니다.
그리고 이 일갈은 우리에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도 지식을 자랑하려거든 그 입 다물라!
공갈 협박이나 하려는 그 입은 다물라!
너희가 입이 있음은 믿음을 고백하라고 있는 것이요,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있는 것임을 알아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만일 예수를 진정 우리의 구원자로 체험하였다면
복음에서 치유 받은 사람들이 늘 그러하듯
하느님께는 영광 찬미 드리고 이웃에게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라고 우리의 입이 있는 것임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