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사람이여, 그대는 이러한 것들을 피하십시오.”
바오로 사도는 오늘 디모테오를 하느님의 사람이라고 하며,
하느님의 사람이라면 이런 것들을 피하라고 하는데
그 피해야 할 것들이란 <병적인 열정>과 <갖가지 욕망>입니다.
먼저 병적인 열정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여기서 열정이란 어떤 것에 열중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보통 좋은 것에 열중하는 힘을 열정이라고 하고,
하느님의 일에 열중을 하면 거룩한 열정이라고 한다면
안 좋은 것에 병적으로 열중하는 것을 병적인 열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바오로 사도가 여기서 말하는 안 좋은 일이란 어떤 것입니까?
첫째는 주님의 가르침과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인데,
200 주년 성서의 번역에 따르면
교만함으로 인해 눈이 멀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교만은 가장 치명적인 영적인 병입니다.
모든 덕을 무력화시키는 것일 뿐 아니라
하느님도 보지 못하게 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눈과 귀를 멀게 하고 자기 생각과 주장에 빠져있게 합니다.
둘째는 그래서 논쟁과 설전에 온 힘을 쏟는 겁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교만으로
자기밖에는 없고, 자기 생각이나 주장만 옳다하니
다른 사람의 의견은 다 그르다고 할 것이고
그러니 논쟁과 설전은 피할 수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이미 논쟁과 설전이 벌어진 다음에는
어떻게 해서든 이기기 위해 온 힘을 쏟을 것이고,
“시기와 분쟁과 중상과 못된 의심과 끊임없는 알력”이 이어질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느님의 사람이 피해야 할 두 번째 것으로
바오로 사도가 제시하는 갖가지 욕망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세상에 올 때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고,
이 세상을 떠날 때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을 아주 멋지게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욕망은 하느님께 대한 갈망과
이웃 사랑에의 열망을 우리 마음 안에서 몰아내지요.
욕망은 소유하게 하지 사랑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에서
소유적 삶을 살면 존재를 잃게 됨을 얘기하는데
실로 소유는 존재를 소유의 대상으로 삼고 파괴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도 파괴하게 하지요.
그래서 바오로 사도도 욕망은 파멸과 고통을 초래할 뿐이라고 합니다.
실로 신앙이 없고 그래서 사랑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욕망을 실현함으로써 행복하려고 합니다.
행복이란 만족의 상태인데 욕망을 쫓는 사람은
욕구의 만족만 알지 사랑의 만족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욕구란 욕구하는 것을 소유하는 순간엔 만족을 주기도 하지만
그 욕구하는 것을 소유하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좋지 않고 싫어질 겁니다.
이것이 바로 싫증인데, 싫증이란 싫어하는 증세,
곧 욕구만족을 욕구불만으로 바꾸는 심리적인 병증이며
좋아하던 것을 싫어하는 것, 곧 악으로 바꾸는 병증입니다.
그러므로 욕심, 특히 돈에 대한 욕심이 모든 악의 뿌리라는
바오로 사도의 오늘 말씀을 우리는 명심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행복이 만족된 상태하면 결핍은 불행을 의미하기 때문에
나눔을 강조하는 하는 까닭을...... 알아듣겠습니다.
독점이 죄가 되는 이유는 내가 더 갖은 만큼 다른이가 갖지 못하는
결핍으로 상대가 불행하기 때문이겠지요.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는 말씀처럼
나는 어디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
소유와 존재... 어디에 마음이 있는가 다시 한번 돌아보는 이 순간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