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디모테오와 티토 축일을 오늘 지내는 이유는 어제 회심 축일을 지낸
바오로 사도의 뒤를 이은 사람이 이 분들이었기 때문이고,
성 디모테오와 티토 축일을 같이 지내는 이유는
두 분 다 바오로 사도가 아들이라고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관계를 보면서 계보와 인맥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나는 어떤 관계, 계보,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지 성찰해 봅니다.
물론 정치판에서 흔히 보는 그런 것이 아닌 영적인 면에서 얘기하는 거지요.
나의 아들은 있나?
나를 아버지라고 하는 사람이나
나를 아버지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있는데 실로 나의 영적인 아들은 있는가?
나도 그를 나의 영적인 아들이라고 할 수 있고
그도 나를 영적인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아들 말입니다.
이런 묵상을 하다 보니 은근히 씁쓰레하고 슬프기도 하면서도
헛웃음이 나왔는데 말하자면 쓴 웃음이 나온 거지요.
언감생심이지, 어찌 영적인 아들을 생각하고 있는가?
네가 얼마나 영적으로 잘 살았다고 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하는가?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가 우리 수도회의 중요한 양성을 맡았었고,
우리 수도회의 중요한 봉사는 영성적 봉사라고 떠들고 다녔으니.
그러고 보니 문제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그 부모에게서 그 자식이 나오는 것인데
지금까지의 저는 나는 개떡같이 살면서 형제들한테는 불만하였습니다.
어제도 미사를 드리면서 저는 내내 저 형제는 왜 저럴까 생각하였지요.
그러다 나를 만족케 하는 사람이기를 그에게 바라고 있구나 하고 반성하고,
나의 만족을 채우는 형제들이기만을 바라고 요구했지
내가 그들에게 영감을 주고 열성을 불러일으켜주지 못했음을 반성했습니다.
오늘 편지에서 자기의 안수로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라고
바오로 사도는 디모테오에게 자신 있게 권고합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자신이 있습니다.
자신의 안수로 디모테오가 하느님의 은사를 받았다고.
그런데 저는 바오로 사도의 역할은 하지 않고
형제들에게 왜 디모테오와 티토와 같은 사람이 못 되느냐고만 합니다.
자기만족이나 쫓는 인간이 어떻게 남을 만족케 할 수 있을 것이고,
타오르지 않는 불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불타게 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는 타오르지 않으면서 바오로 사도가 디모테오에게 한 말처럼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기서 같이 타오르는 불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반성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오늘 다시 생각해봐야겠습니다.
같이 타오를 불이 누구일지?
나의 바오로 사도는 누구이고,
나의 디모테오와 티토는 누구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