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놓으면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 되는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한다.”
주님께서는 오늘 하느님 나라를 씨 뿌리는 것에 비유하시고,
씨 중에서도 겨자씨를 뿌리는 것에 비유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이런 돌발적인 묵상을 했습니다.
나는 어떤 씨를 뿌려왔고 지금 어떤 씨를 뿌리고 있나?
나는 과연 하느님 나라의 씨를 뿌리고 있는 건가?
오늘 주님 말씀을 전체적으로 보면
씨를 뿌리는 것도 중요하고,
뿌린 씨를 싹트게 하는 것도 중요하며,
마침내 열매를 맺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씨를 뿌리느냐가 중요하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왜냐면 오늘 주님은 하느님 나라의 씨를 뿌리는 것을 전제로 말씀하시고,
씨를 뿌리기만 하면 저절로 싹트고 자라 열매 맺는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을 믿기 힘들어합니다.
농사짓는 사람은 씨 뿌린 다음에 그것이 싹트고 자라고 열매 맺기까지
자기가 얼마나 애 써야 하는지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쌀농사가 아니라 자식농사만 해도 애를 나 놓기만 하면
얘가 저절로 크고 저절로 사람 노릇하는 것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절로>라니?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씨는
저절로 싹트고, 자라고, 열매 맺는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씨가 세상의 씨라면 <저절로>가 절대로 불가능하겠지만
하느님 나라의 씨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노자도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고 하였지요.
여기서 무위無爲란 인위人爲가 없는 것이고,
자연自然이란 우리가 요즘 뜻하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손을 타지 않고 스스로 그러한 것을 말하는 거겠지요.
그러므로 무위자연이란 인간이 인위적으로 뭣을 하지 않으면
무엇이 스스로 그러하거나 그렇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이 우리 신앙적인 말로는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하신다는 뜻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정말 하느님 나라의 씨를 뿌리고 자라고 열매 맺는데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하고, 할 것이 없는 것일까요?
우리는 여기서 다시 무위의 뜻,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의 뜻을 다시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무위란 자포자기적이거나 무책임하고 게으르게 아무 것 하지 않음인가?
무위란 자기본위 또는 자기중심으로 무엇을 하지 않음입니다.
무엇을 하되 자기가 없음입니다.
자기 이익,
자기 계획,
자기 뜻,
자기 고집,
자기 힘. 이런 것이 없이
하느님이 내가 되고 내가 하느님이 되어,
하느님의 뜻이 내 뜻이 되고 내 뜻이 하느님의 뜻이 되어,
나의 힘은 빼고 하느님의 힘이 나의 힘이 되어 무엇을 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회심축일에 저는 하느님께 여쭙고 나는 뭘 하는지 자문했는데
여쭙고 뭘 하기도 해야겠지만 아예 내가 뭘 하려고 하기보다는
하느님께서 하라 하시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는 것이 차라리 낫겠습니다.
그렇겠지요?
이 것을 이렇게 하려는데 이 것이 당신 뜻에 맞는지 여쭙는 것보다
당신 원하시는 것 하려 하는데 당신 뜻이 뭔지 여쭙는 게 차라리 낫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