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하늘나라란 어떤 곳인가?
물리적으로만 보면 이 땅 위에 있는 나라가 아니고
저 하늘에 또는 하늘 위에 있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천국’ 또는 ‘천당’을 얘기할 때 이곳은 더 이상
이 세상의 고통이 없는 곳으로서 우리인간이 염원하는 곳이듯
하늘나라는 진정 이 세상나라와 다른 행복의 나라를 뜻합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와 복음을 보면
하늘나라가 행복의 나라인 것은 맞는데
하늘나라가 고통이 없는 나라인 것은 아닙니다.
가난, 슬픔, 모욕과 박해, 이런 것들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하늘나라에서 사는 사람이요, 하늘나라의 사람이라고 하고,
뒤집어 얘기하면 부자들이 떵떵거리며 사는 곳이 아니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
가난한 사람들을 내치지 않고 품고 사는 곳이 하늘나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 스바니야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는 네 한 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
그러므로 정리를 하면 이렇게 됩니다.
행복의 나라인 하늘나라는 가난한 사람이 소유하는 나라이고
가난한 사람도 환영받으며 가난한 사람도 행복한 나라이다.
먼저 하늘나라는 가난한 사람이 소유하는 나라라는 것을 보겠는데
마태오복음은 그저 가난한 게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걸 얘기하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하늘나라를 소유하기에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태오복음이 마음의 가난을 얘기하는 것은 재물로는 가난해도
욕심이 많은 사람도 있기에 이렇게 얘기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이것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정확한 번역이 아니지요.
그래서 200주년 성경은 ‘영으로 가난한 사람’이라고 번역하고
개신교 성경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라고 번역을 하였지요.
마음이 가난한 것을 넘어 Spirit(정신과 영)이 가난한 것이며
더 나아가서 성령 안에서 가난한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것이 욕심이 가난한 것이듯
정신이 가난한 것은 세속의 정신이 가난한 것이며
가난한 정신이 성령으로 충만키에 다른 만족은 구하지 않고
세상의 것들에 의해 행복이 좌우되지도 않는 그런 가난입니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이 있듯이
배부른 돼지보다 배는 고프지만 늘 성령으로 충만하여 산
프란치스코나 성인들의 삶이 더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다음으로 하늘나라는 가난한 사람도 환영받는 나라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부자들만 환영받지만
하늘나라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환영받기에
부자들은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는 것만큼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하늘나라의 문은 좁은 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배부른 부자는 뚱뚱하기에 들어갈 수 없고
가난한 사람은 배짝 말랐기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문, 행복의 문은 누구에게나 똑같습니다.
부자에게는 넓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좁거나
가난한 사람에게는 넓고 부자에게는 좁거나 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똑같은 문이요 공정한 문이지만 좁은 문입니다.
선인악인 가리지 않고 햇빛과 비를 내리시는 공정하신 하느님은
부자빈자 가리지 않고 구원과 행복을 주시는 공정하신 하느님이지만
단지 하늘나라의 문은 좁게 만드신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