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오늘 복음은 게라사 지방의 더러운 영에 대한 얘기입니다.

어떤 사람 안에 들어가 게라사 지방을 내내 떠나지 않던 영인데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서 쫓아내려고 하시자 돼지 안으로 들어가서라도

게라사 지방을 떠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다가

돼지들과 함께 물에 빠져 죽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여러 차례 더러운 영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복음에서 굳이 악령과 구분하여 더러운 영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그 대표적인 더러운 영이 게라사의 더러운 영인 것입니다.

 

더러운 영이 왜 악령이 아니고 더러운 영이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방해하는 악령과 달리

단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거부하는 영일뿐인데

관계를 거부하는 이유가 자기가 그렇게도 집착하고 더럽게도 집착하는

게라사 지방을 예수님께서 떠나라고 명령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납기 그지없는 더러운 영이 예수님께로 달려오고

엎드려 절까지 하며 공손하게 청하는 모습을 우리는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환영하러 나간 것이 아니라 영역침범을 항의하러 간 것이고

공경하기에 절한 게 아니라 비루하게 매달리는 거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영은 게라사를 자기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게라사 안에서 그를 저지할 존재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쇠사슬로 묶어 두려했지만 번번이 그것을 부쉈다고 하잖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기 영역 안으로 들어오시고

자기 영역에서 자기를 쫓아내려고 하시니 떠나라고 하시는 예수님을

오히려 제발 떠나달라고 애걸복걸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더러운 영은 돼지 안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하고

돼지와 함께 물에 빠져 사라지고 맙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에게 돼지는 부정한 짐승. 곧 더러운 짐승인데

더러운 영은 더러운 짐승 안에서라도 게라사 지방을 떠나지 않으려고

더럽게도 자기 영역에 집착을 한 존재였던 것이고,

지상을 떠나 하느님께로 가지 않으려 했던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보면 예수님보고 자기 지역을 떠나달라고 한 것이

더러운 영뿐이 아니었습니다.

돼지업자를 비롯한 그 마을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 고을을 제발 떠나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이들을 보면 우리도 주님께 떠나달라고 할 수 있잖겠습니까?

우리는 이들과 다르다고 할 자신이 있습니까?

 

베드로 사도도 고기잡이 기적을 체험한 후 예수님께

자기는 죄인이니 떠나가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부자 청년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예수님을 따르라 했을 때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까?

죽을상이 되어 떠나지 않습니까?

우리도 여러 형태로 자기 자리와 영역을 고집하며 떠나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Privacy(사적영역)를 정해놓고 침범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하지 말라 합니다.

충고를 할라치면 그런 말 하려면 가라고 합니다.

심지어 성당자리도 자기자리를 고집하며 사람들과 떨어져 앉습니다.

하느님께 나아가지 않고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으며

자기영역 안에 있어야지만 평안을 느끼는 사람들도

게라사의 더러운 영이나 고을 사람들처럼 주님께서

자기들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침범이라고 여기며

떠나달라고 한 것과 같은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닐까요?

나는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다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