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평화가 강물처럼...
어린시절, 저희 집 마루 선반 위엔 거의 늘 꿀단지가 올려져 있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가짜 꿀이 아니어서 혀가 얼얼할 정도로 당도가 높은 진짜 자연산 꿀이었던 거죠.
그런데 저는 워낙 먹는 데 신경을 쓰는 아이가 아니라, 할머니가 "얘야, 꿀 좀 먹으련...?"하고 권하셔야
그럴 때마다 너무 달아 조금밖에 먹지 않았지요.
그리고 그 먹거리가 매우 궁했던 그 시절에 쪼코렡, 과자...따위가 어디 그리 흔했던가요.
어쩌다 그런 맛난 게 생기면 혼자 먹는 건 언감생심, 꼭 형이 나타나야 나누어 먹곤 했지요.
몸에 걸치는 것들 역시 좋고 호사스런 것엔 별 관심이 없었던 게,
바로 위로 잘 사는 외사촌 형이 있어 그 형이 쓰던 학용품이며 가죽 가방, 가죽 구두...등들은 영락없이 제 차지였던 것이죠.
그런데 그 시절 제 주변에 그런 고급품을 쓰는 아이들이 눈씻고 보아도 없으니, 저만 눈에 튀는 게 정말 싫어
엄마가 얻어오신 그런 물품들을 잘 쓰기는커녕 안쓰겠노라 칭얼대기가 일쑤였죠.
"저 녀석은 좋은 게 있어도 못마땅해 하니...원, 참!" 하며 유별나해 하시는 엄마의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
그렇게 고급 가죽가방, 구두...들은 곁눈질도 주지않아
결국 어른들도 제 고집에 손을 드시고 마는 거지요.
아마도 그런 몸에 밴 어린시절이 있었선지
생기기도 잘 생기고, 좋은 것이 있으면 혼자만 챙기기보다는 우선 형제들과 나누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답니다.
성거산에서 지낼 때 일이 떠오릅니다.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주기 좋아하는 세라피노 형제 역시
청주지구 재속회 활동을 했던고로 아마도 축일 때나 특별한 경우에 회원들이 고마움의 선물로
사랑하는 우리 신부님이 겨울이면 추운 성거산에서 하마 춥게 지낼새라 최고급 모직 티...따위를 해주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것들을 세탁을 잘못한 바람에 전부 쫄아들어 결국 덩치가 작은 제 차지가 된거죠.
새로 산 것들이 아니어도 그 이후로 겨울마다 따뜻하게 잘 입고있으니, 이만하면 입을 복도 많은 거 아닌가요?
겨울이 오면 세라피노 형제와의 생각들이 떠올라 입고있는 옷들이 다시금 따사로워지며 참으로 고마운 거지요.
어디 살아가면서 위의 한 두 사례 뿐입니까.
입은 짧지만 걸핏 맛난 먹거리도 잘 생기고, 그리 호사는 즐기지 않지만 잘 입고 지내니
남(특히 지나치게 호의호식하는 사람들)부러울 게 하나도 없는 겁니다.
어릴적부터 어른들로부터 나눔의 실천을 잘 몸에 익혔으니
검소한만큼 하느님께서 다 채워주시어 부족할 게 없는 것이고,
분수에 넘치는 것들일랑 부족한 이웃들에게 나누고 공유하며 살아간다면
거리의 자선남비가 아니더라도
이 사회가 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