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평화와 선.
기차는 그리움이다.
특히 석탄이나 디젤로 움직였던
"칙칙폭폭" 긴 연기를 내뿜으며 달리는 내 어린시절의 기차는
요즘에는 느낄 수 없는
향수나 미지의 세상을 향한 아련함을 실어 왔다.
유년 시절
외가집, 의정부에서도 외진 수락산 자락 밑,
동막골이란 마을로 가려면 꼭 기차를 타야했다.
(그 때는 뻐스가 없었나보다)
서울역에선지 청량리역에선지 출발역에 대한 기억에 없지만,
엄마와 내가 기차에 몸을 싣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달리는 차창 넘어로 보이는 넓은 세상- 수유리, 도봉산 등지였으리-은
지금처럼 조밀한 도시의 모습과는 전혀 달라
민가가 거의 없는 평범한 시골 전경이었음에도
마냥 신기하기만 했으니,
아마도 엄마와 함께 어쩌다 외가집엘 가는 설레임 때문이었으리.
그리고 거기엘 가면,
날 귀애해 주시는 외할아버지,할머니며 외삼촌들이 계셨고
뒷 곁 나즈막한 산으로 가면 밤나무가 많아
때로는 지천으로 떨어져 있는 알암을 줍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엄마가 간혹 나를 데리고 어델 가시려면,
평소와는 달리 꼭두새벽부터 치장을 해야했다.
세수를 빡빡시키시고- 그럴 때마다 대조적으로 살살 씻겨주시는
할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은 그렇게 좋을수가!- 얼굴과 손에
로숀을 잔뜩 발라 주셨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로숀의 그 향긋함이 싫지 않았음에도
나는 로숀 바르는 걸 몹시 싫어했다.
로숀하면 엄마의 외출 표시 암시이니까,
정작 엄마의 외출이 달갑지 않았던 게다.
엄마와 함께
의정부로 향하는 기차 차창 밖으로
호기심 가득찬 치기어린 소년에겐
온 세상이 다 신기하기만 했으니,
꿈이 현실로 이뤄지는 행복 자체였다.
그런데 요즘이면 1시간 남짓 갈 수 있는 거리임에도
그땐 왜 그리 기차 시간이 길었던지...
마냥이어서, 족히 2시간은 걸렸던 것 같다.
의정부가 가까와지면
도봉산 아래 넓다란 미군부대가 보였고,
때로는 무얼 잘못했는지, 산 쪽으로 쫒기는 이가 보이고
그 뒤를 총을 쏘아대며 쫒아가는 미군!
그럴 땐 어린 맘에도 아무리 잘못했어도 동족에게 총뿌리를 겨누는
양코배기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어
적개심마져 솔솔 일어나는 거였다.
의정부역에서 내려서도
외가집에 닿으려면 제법 큰 냇물, 징검다리를 건너
족히 30분 정도는 걸어야 하는 먼 거리였지만,
외가 동네가 한 눈에 들어 와선지 마냥 신나는 걸음걸이였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깍깍...!" 짖어대는 까치 소리.
낯선 손님에 대한 상큼한 예우소리가 그리 싫지는 않았다.
엄마와 기차-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여전히 현실을 가능케하는 아름다운 회상들.
곱디 고운 엄마의 모습- 우리 엄마가 예뻤다는 걸 그땐 전혀 몰랐는데
세월이 훨씬 지나 사진을 보니 '와-! 엄마가 참 예뻤다'.
그런 엄마의 나들이 옷 중에 유난히 지워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까만 비로도 치마였다.
비로도의 보드란 촉감이 내 조막손에 자근자근 느껴지면서
엄마와 내가 동리에 들어서면,
우선 엄마는 여러 어른들을 만나 그동안의 소식을 들으시며
때로는 뉘 돌아가셨는지 엄마의 눈에선
금방 닭똥같은 눈물 방울을 뚝뚝 떨어졌고,
그런 엄마의 슬픈 모습을 보는 건
참으로 싫었고 나도 맘 속으로 울음이 나왔다.
그랬다.
기쁨인 듯 슬픔이련 듯
하얗게 긴 하품을 토하며 달리는 기차는
어쩌면 영원을 향해 끊임없이 내달리는
한 켠 내 마음과 같다고나 할까.
하늘 엄마가 보고프면
영락없이 기차의 기적 소리가 아련히 들려온다.
기차는 그리움이다.
특히 석탄이나 디젤로 움직였던
"칙칙폭폭" 긴 연기를 내뿜으며 달리는 내 어린시절의 기차는
요즘에는 느낄 수 없는
향수나 미지의 세상을 향한 아련함을 실어 왔다.
유년 시절
외가집, 의정부에서도 외진 수락산 자락 밑,
동막골이란 마을로 가려면 꼭 기차를 타야했다.
(그 때는 뻐스가 없었나보다)
서울역에선지 청량리역에선지 출발역에 대한 기억에 없지만,
엄마와 내가 기차에 몸을 싣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달리는 차창 넘어로 보이는 넓은 세상- 수유리, 도봉산 등지였으리-은
지금처럼 조밀한 도시의 모습과는 전혀 달라
민가가 거의 없는 평범한 시골 전경이었음에도
마냥 신기하기만 했으니,
아마도 엄마와 함께 어쩌다 외가집엘 가는 설레임 때문이었으리.
그리고 거기엘 가면,
날 귀애해 주시는 외할아버지,할머니며 외삼촌들이 계셨고
뒷 곁 나즈막한 산으로 가면 밤나무가 많아
때로는 지천으로 떨어져 있는 알암을 줍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엄마가 간혹 나를 데리고 어델 가시려면,
평소와는 달리 꼭두새벽부터 치장을 해야했다.
세수를 빡빡시키시고- 그럴 때마다 대조적으로 살살 씻겨주시는
할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은 그렇게 좋을수가!- 얼굴과 손에
로숀을 잔뜩 발라 주셨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로숀의 그 향긋함이 싫지 않았음에도
나는 로숀 바르는 걸 몹시 싫어했다.
로숀하면 엄마의 외출 표시 암시이니까,
정작 엄마의 외출이 달갑지 않았던 게다.
엄마와 함께
의정부로 향하는 기차 차창 밖으로
호기심 가득찬 치기어린 소년에겐
온 세상이 다 신기하기만 했으니,
꿈이 현실로 이뤄지는 행복 자체였다.
그런데 요즘이면 1시간 남짓 갈 수 있는 거리임에도
그땐 왜 그리 기차 시간이 길었던지...
마냥이어서, 족히 2시간은 걸렸던 것 같다.
의정부가 가까와지면
도봉산 아래 넓다란 미군부대가 보였고,
때로는 무얼 잘못했는지, 산 쪽으로 쫒기는 이가 보이고
그 뒤를 총을 쏘아대며 쫒아가는 미군!
그럴 땐 어린 맘에도 아무리 잘못했어도 동족에게 총뿌리를 겨누는
양코배기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어
적개심마져 솔솔 일어나는 거였다.
의정부역에서 내려서도
외가집에 닿으려면 제법 큰 냇물, 징검다리를 건너
족히 30분 정도는 걸어야 하는 먼 거리였지만,
외가 동네가 한 눈에 들어 와선지 마냥 신나는 걸음걸이였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깍깍...!" 짖어대는 까치 소리.
낯선 손님에 대한 상큼한 예우소리가 그리 싫지는 않았다.
엄마와 기차-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여전히 현실을 가능케하는 아름다운 회상들.
곱디 고운 엄마의 모습- 우리 엄마가 예뻤다는 걸 그땐 전혀 몰랐는데
세월이 훨씬 지나 사진을 보니 '와-! 엄마가 참 예뻤다'.
그런 엄마의 나들이 옷 중에 유난히 지워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까만 비로도 치마였다.
비로도의 보드란 촉감이 내 조막손에 자근자근 느껴지면서
엄마와 내가 동리에 들어서면,
우선 엄마는 여러 어른들을 만나 그동안의 소식을 들으시며
때로는 뉘 돌아가셨는지 엄마의 눈에선
금방 닭똥같은 눈물 방울을 뚝뚝 떨어졌고,
그런 엄마의 슬픈 모습을 보는 건
참으로 싫었고 나도 맘 속으로 울음이 나왔다.
그랬다.
기쁨인 듯 슬픔이련 듯
하얗게 긴 하품을 토하며 달리는 기차는
어쩌면 영원을 향해 끊임없이 내달리는
한 켠 내 마음과 같다고나 할까.
하늘 엄마가 보고프면
영락없이 기차의 기적 소리가 아련히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