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581 추천 수 1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아니, 욘 녀석이 뭐지?"


  낮기도를 하러 경당에 들어서서 성무일도를 펼치려는 순간, 웬 쪼맨한 송충이가 커버에 붙어 꼼지락거리고 있다.  아마도 오전에 정원에서 일을 하던중 나뭇가지에 붙어있던 녀석이 본의아니게 내 몸으로 옮겨왔고 방황하다가 급기야는 성무일도 커버에까지 붙게 된 모양이다.  순간 징그럽다는 생각으로 떼어버리려고 손가락으로 처버렸지만, 뽄드를 붙힌 것처럼 전혀 떨어지질 않고 계속 자벌레처럼 기는 거였다.  


  "가만, 내가 여기 경당에서 얘를 떨쳐버리면, 정원과는 거리가 먼 딴 세상에서 매양 헤메다 결국 죽을 게 아닌감?"  

  그 순간 여린 생명에 대한 경외심으로, 얼릉 성무일도 시작을 뒷전으로 한 채 2층 식당 베란다로 달려갔다.  그곳 바로 아래는 애벌레 삶의 터전인 정원이기에, 그곳에서 떨쳐내어 제 삶의 자리로 돌려보내 주었다.


  정원으로 돌려보내준 작은 송충이라는 애벌레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자연의 오묘한 신비를 묵상하게 된다.  갖가지 크고 작은 애벌레들은 나뭇잎을 갉아먹고 자라 때가 되면 여러 모양의 크고 작은 나비가 되고, 그 나비들은 온갖 식물들의 꽃을 수정시켜 열매를 맺게 하는 순환 과정을 거치는,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귀한 존재들임에랴!  

  사람은 벌레들과 더불어 살기 보다는 당장 목전의 짧은 생각으로 해충으로 여겨 보이는 족족 죽이기 싶상인 게 그들과의 우선적 관계가 아닌가.


  내가 가꾸는 정원만 하더라도, 잔디를 잘 가꾼다는 목적으로 매일 풀과의 전쟁이다.  풀을 뽑으면서 내 자신에 대한 묘한 아이러니를 어쩌랴싶게, 인간의 입장에서 '잡초'라고 하는 표현조차 싫어하고 내 개인적으로는 궂이 '풀'이라고 표현한다.

  왜냐하면 풀이 자라지 않는 땅이라면 생명이 자랄 수 없는 사막이나 광야일 뿐인 것을, 이스라엘 성지순례중에 '네겝'이라는 사막과 거대한 '크레이들' 광야에서 직접 보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막과 광야가 전혀 없는 한국이라는 이 땅은, 그런 곳에 비하면 어느 곳에서나 풀이 잘 자라고 있는 비옥하고 아름다운 땅이 아니던가!  그래서 아무데서나 자라고 있는 풀을 대하면 우선 고마움이 앞선다.  풀은 또 모든 생태계에서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기본이 아닐런가.  

   매일 오르다시피하는 인왕산 길의 중간쯤, 성곽 틈에서조차 평소 물없이 자라는 풀을 대하면 참으로 대견한 생각이 들고 생명에 대한 경외심으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정원 잔디에서 자라는 풀들과, 잔디를 보호하기 위해 매일 전쟁처럽 치루는 풀을 뽑아내며 미안한 마음으로 시소게임을 하는 내 자신의 아이러니를 어쩌지 못하면서도, 나는 틈만 나면 꽃삽으로 풀들의 뿌리를 캐어내고 있다.            


  정원으로 돌아간 작은 애벌레야, 추후 어떤 모양의 나비가 되어 훨훨 나르며 매양 틈만나면 풀을 뽑고 있을 나를 보기도 하겠지.  그러고는 "맛..님, 절 기억하시나요?  얼떨결에 경당에까지 쫒아 들어가 죽을 뻔 했던...하느님 생명의 신비로 이 세상에 태어나, 성모님(상) 둘레에 우리들 터전에 아름다운 장미가 저렇듯 곱게 피어나다니요!  장관스레 꽃을 피우고 있는 활련화와 백일홍...곧 이어 줄을 이어 피어날 수국도 볼만 하겠어요."   


  

  • 깻잎 2018.06.23 20:55
    이런 '작은' 일상일들로 인해 딜레마에 점점 빠지는 경우가 늘어나,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생활나눔

일상의 삶의 체험을 나눕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3 할머니와의 데이트 T 평화와 선. 참, 대단한 분! 이씨 조선 왕가 마지막 손의 며느님으로서 그 강직함에 손색이 없으신 '쥴리아' 할머니! 84세의 노구에다 한 쪽 손이 마비되고 한 ... 1 2006.06.03 2399
142 위령의 달을 보내면서... T 평화/ 선 토요일마다 수녀원으로 미사를 드리려 갑니다. 미사에 가기 전 새벽 6시가 좀 못 되어 저 아래 저수지까지 산보하기 위해 걷습니다. 새벽 하늘에 무수... 김맛세오 2011.11.26 2402
141 무궁화 일념(一念) T 온 누리에 평화! 3년 전이었으리... 어느 할아버지가 10Cm 정도의 무궁화 묘목을 가져다 주셨다. 얼마나 잘 자라는지, 어느 녀석은 내 키만큼이나 튼실하게 자... 김맛세오 2011.08.14 2405
140 영지(靈芝)야 반갑다 T 늘 평화가 함께 하시길... 버섯을 보면 역시 어릴 적 생각이 난다. 동작동(현 현충원 자리) 우리 집 뒷산엔 이렇듯 장말철이나 우기엔 소쿠리 하나 들고 뒷 산... 2007.08.05 2410
139 포르치운쿨라 행진 6일째 소식 나눔 순례목적ᆢ기억과 회개 구간거리ᆢ영전성당~신정성당(22km) 보나벤뚜라성인의 삼중도. 정화.조명.일치와 뒤엉켜 오늘도 순례의 길을 걷는다ㆍ순례 6일째이지만 아직... 2 file 홈지기 2015.07.23 2417
138 내 친구, <병두>의 세례 T 평화가 강물처럼 흘러 흘러. 지난 주일은 유난히 기뻤던 날. 멀리 청학리(남양주군)에 사는 친구, 병두의 영세식이 있었다. 걷고 뻐스 타고 지하철을 몇번이나 ... 3 2007.02.13 2418
137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T 평화/ 선 &quot;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달렸다&quot;는 화엄경의 말씀으로 평소에 무척이나 선호하는 글귀입니다. 어쩌면 이 말씀은 하느님 경지에로의 경계를 넘나드는 ... 2 김맛세오 2012.03.20 2424
136 실로 오묘한 자연의 법칙 T 평화/ 선 마당 화단에 물을 주다 보니 장미의 여린 잎마다 진디물이 일사불란한 군대의 호령에 맞추 듯 맛나게 진액을 빨아먹고 있습니다. 장미에 진디물이 많... 김맛세오 2012.05.01 2428
135 성 프란치스코 대축일 아침에 T 평화/ 선 보통 큰 공동체에선 이런 날이면 여러 형제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라 웬지 설왕설래하는 들뜬 마음이기 쉽다. 이곳 성거산 같은 작은 공동체의 분위... 3 2010.10.04 2429
134 가을 야생화- 용담(龍膽) T 평화가 하늘처럼. 며칠 전까지 선배님들 무덤가에 구절초가 물결처럼 피어나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구절초도 여러 종류려니- 예 피어난 구절초를 내 나름대로 '... 2007.10.12 2431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 53 Next ›
/ 53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