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52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T 온 누리에 평화

 

  공부들 하시느라 어려웠던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잊혀졌던 그 반대의 옛 일들이 하나 둘 떠오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한동안 과외를 했지요.

너나없이 넉넉지 않았던 그 시절에, 엄마는 제가 원하는 거면 다 해주실 정도로

뒷바라지를 잘해 주셨거던요.  아마도 그때 과외를 하지 않았다면 제 성적이 그렇게 상위권에 들지는

못했으리라 봅니다.  

 

  과외 선생님이 어찌나 요점 정리를 잘 프린트해서 주셨던지...아주 쏙쏙 머리에 잘 들어와 재미가 있었고,

한 10명 정도의 과외 그룹 맴버중에서 저는 늘 1등 자리를 지켜, 선생님 편에서도 제가 늘 자랑스런

제자였다는 것을 느끼셨을 테지요.

 

  그렇게 저는 당시 서울시 입확률 중에서도 가장 높았던 '덕수중학교'에 1/4의 경쟁률을 뚫고 

그것도 아주 상위 성적으로 무난하게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제나 지금이나 저는 원래 무어든 잘 먹지를 않고 소식하는 편이어서

한때는 "영양실조"라는 진단이 나와 '원기소'라는 영양제를 복용하기도 했죠.

얼마나 덩치가 작았던지, 중학교 입학 당시 학교에서 준 커다란 국어사전을 하학길에 들고 오는데,

제가 생각해도 국어사전이 저보다 더 큰 것 같은...그렇게 낑낑대며 겨우 들고 집으로 왔던 자신의

왜소한 자화상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으니...!

  훗날 엄마로부터 가끔,  "예야, 왜 난 너에게 그토록 좋아하던 제과점 빵같은 걸 가끔 사 줄 수 있는

형편이었는데도, 할머니 할아버지를 챙겨드리는 데만 신경을 썼단다." 라면서 후회의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엄마, 괜찮아요.  대신 할머니가 절 끔찍히도 잘 해 주셨잖아요."        

 

  그런 어린시절에 비하면 비록 여전히 소식이지만, 가리는 것 없이 얼마나 잘 먹고 지내는지 

제 자신이 대견스러운 겁니다.   

 

  아, '만주벌판'이란 여러분의 쓰거운 체험과는 달리, 동작동에서 흑석 2동으로 이사한 동네가

바로 중앙대학교 옆이요 상도동 고개로 넘어가기 바로 전에 있던 기와집이었지요.  그게 초교 4학년 무렵이었고, 어느 날 막내 삼촌의 심부름으로 아랫 동네의 만화가계에서 여러 권의 만화책을 빌려 왔죠.  그 중에

'복수의 칼'이란 제목의 만화를 신파극처럼 흥미진진하게 읽었고, 이후 돈만 생기면 쪼르르 만화방으로 달려가는 재미를 쏠쏠히 붙혔답니다.

  "할머니, 만화...!"하면, 금새 눈치를 채시곤 두 말씀 없이 쌈지돈을 꺼내주시곤 했으니,

그렇게 만화는 곧 상상력을 잘 길러준 제 어린시절 정서의 큰 몫이었습니다. 

  제가 유독 여행을 잘 할 수 있고 호기심이 많은 근간도 만화에서 길러진 것이라면 좀 과언일런가요?

 

  또 하나 제 뇌리에 잊혀지지 않는 황량했던 '상도동으로 넘어가는 고갯 길'!

  저는 그 길을 떠올리면, 마치 산적이라도 나오거나 서낭당이라도 있어야 할  법한 인적이 매우 드믄

비포장 도로였지요.  아마도 긴 세월 동안 별로 아주 드믈게 흑석동에서 상도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어서

자못 그 길을 넘노라면 잡초조차도 자라기 싫은 황량함에 지신 밟듯 가야하는 매우 한적한 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곤 했죠.  그런 고갯길을 동재기 시절, 몸에 탈이 나면 할머니와 함께 '이화약방'이라는 곳을

찾아가기 위해 넘은 적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곳엘 가면 남바위 쓰신 할머니의 모습이 선연히

나타나실 둣 하답니다.   

 

  중대 옆 동네에서(초교 4학년 때) 할머니는 저희 집 최초로 '허 마리아'란 본명으로 영세를 하셨지요.

  매일 새벽 미사를 마다하지 않으셨던 할머니를 쫒아 그 추운 엄동설한에도 성당엘 가면- 당시 가난했던

시절이라 성당에 어디 난방을 했나요?, 유독 손발을 시려하는 저였지만 한결같이 할머니 꽁무니를 쫒아

다녔으니, 그 기도의 염력이 지금의 생활에도 변함없이 생기는 거지요. 

  그런 은총의 고리를 주신 하느님과 할머니께 더없이 감사!!!


생활나눔

일상의 삶의 체험을 나눕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12 황금 빛 노란색 뱀 이야기 (1) 황금빛 노란색 뱀 이야기 (1)2021년 9월 어느 날 깊은 밤, 사람 몸처럼 굵은 뱀이 내 몸이 닿지 않게 몸 전체를 나선형 스프링처럼 휘감고 있는 꿈을 꾸었다. 얼... 고파울로 2024.03.07 167
511 환절기 면역력 높여주는 한방차 5가지 환절기 면역력 높여주는 한방차 5가지 아침저녁과 한낮의 일교차가 크게 벌어지는 환절기라 감기나 호흡기 환자가 늘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데다 건조한 ... 1 이소영 2010.10.08 2748
510 화장실 배수관 이것은... 인내 화장실 배수관 파이프를 구입하는데 정확히 3시간 하고도 20분이 걸렸다. 제품이 진열된 곳에서 선정한 다음, 1차 영수증 발급을 받고 그 영수증을 가지고 계산대... 3 로제로 2008.11.21 2290
509 형과의 만남 T 평화가 강물처럼...   "여기 이 사진의 작은 한옥식 대문 자리가 바로 동작동 현충원의 지금 입구란다. 그 오른쪽이 '이수교'로 넘어가기 전 '동재기 나루... 김맛세오 2013.07.01 2207
508 현실과 진배없는 나의 꿈 T 평와와 선 나는 평소 꿈을 잘 꾸는 편입니다.  꿈은 대부분 현실이 아니지만, 생생한 꿈을 꾸고 일어난 날에는, 그 꿈의 내용이 하도 현실과 같아 다른 이들에... 김맛세오 2020.09.27 837
507 현란한 꽃의 반란 T 평화/ 선 예전에 네델란드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튜립이나 안네의 일기, 또는 램블란트, 고흐로 유명한 작은 나라면서도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들이 많은... 1 김맛세오 2012.05.30 2640
506 현란한 꽃의 반란 T 평화/ 선 예전에 네델란드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튜립이나 안네의 일기, 또는 램블란트, 고흐로 유명한 작은 나라면서도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들이 많은... 1 김맛세오 2012.05.30 2989
505 행복한 생일 타령 T 온 누리에 평화 형(수)한테서 생일 전 전화가 왔었습니다. "함께 식사라도 하자"고. 역시 사랑하는 큰이모도 똑같은 전화를 주셨지요. 그러나 지... 김맛세오 2012.10.24 3334
504 행복한 그리움들 T 평화와 선. 일을 하다 문득 창밖을 내다보니 온갖 그리움들이 모락모락 피어 올라, 파아란 하늘에 묻어나는 얼굴들... 할머니,할아버지,엄마,한동네에 사시던 ... 2006.01.26 3221
503 행복한 그리움 T 평화/선 소나무들은 잘 있을까. 선경을 방불케 하는 '십자가의 길' 주변 사물들은 여전할까. 심심찮게 뾰로롱 나무와 나무 사이 그네를 타는 듯한...작은 새무... 4 2009.12.12 2570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53 Next ›
/ 53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