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온 누리에 평화
여기 정원에는 작고 큰 지렁이 가족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풀을 매거나 거름을 주려고 구덩이를 파려면 어김없이 서너마리씩 보입니다.
특히 비가 내리는 날이면, 땅 표면에 외출을 나온 듯이 기어다니는 녀석들이 자주 보입니다.
원래 지렁이는 눈이 없어 촉각으로만 다니기에 촉촉한 습한 곳이면 어디든지 제 집이니까요.
아시다시피 지렁이가 많은 흙은 아주 기름진 옥토로 변모시키기에
하느님으로부터 흙을 좀 더 나은 생명이게 하는 참으로 좋은 능력을 받은 거지요.
그런데 어떤이들은 그런 지렁이를 보면 뱀을 연상하는지 질겁을 하는 걸 봅니다.
성거산에서 지냈을 적에 걸핏하면 말벌에 쏘였고 그 무서운 독사들과 마주친 게 어디 한 두번입니까.
그에 비하면 지렁이는 쏘기를 합니까 물기를 합니까...그저 오로지 땅 속을 헤집으며
흙을 거름지게 하는 온순하기 짝이 없는 생명일 뿐이랍니다.
아주 오래 전 일입니다.
한 형제와 함께 서울 근교의 산인 '수리산'으로 일찌감치 등산을 나섰습니다.
이른 시각이라 등산객이 많지 않았고, 새벽 이슬을 맞은 지렁이들이 길목 여기저기에 기어가고 있었지요.
저는 나무 젖가락을 만들어 하마 발길에 밟혀 죽을새라 보이는 지렁이마다 집어서 풀숲으로 넣어 주며 걸었습니다.
마침 뒤따라 오던 한 무리 젊은 여자들이 저의 모습을 목격하고는 의아하다는 듯, 왈-
"아저씨 왜 징그러운 그 지렁이들을 그렇게 살려 주는거죠?
걍, 콱 밟아 죽여 버리지요!"
저는 뜨악하니 그 젊은 아낙을 쳐다보며 잠시 할 말을 잊고 있다가,
"무슨 말씀을, 그렇게 무섭게 합니까...징그럽다니요?
지렁이가 얼마나 깨끗한 줄 압니까? 사람이 오히려 징그럽고 무섭죠...!!!???"
아마도 그 아낙의 인식은 지렁이가 징그럽고 하챦다고 여긴 거 겠지만
그래서 생명의 존귀함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쉽게 내뱉은 것일 테지요.
저는 오늘도 풀을 매다가 지렁이들을 발견,
꼼지락거리는 그 모습이 여간 신기하고 귀여운 게 아니었습니다.
"아휴, 하마터면 다칠 뻔 했네.
안녕, 땅 속의 요정, 지렁이야!
놀라게 해 참으로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