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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1 11:06

죽음의 트라우마 (2)

조회 수 87 추천 수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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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트라우마 (2)


1

너댓살 가량 되었을 무렵,
할머니가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는데,
그렇게 심하지 않으셨을 때의 일이니,
이제 소개하려는 죽음에 대한 나의 트라우마는
아마도 서너 살 즈음에 일어난 것 같다.

2

할머니는 마흔이 넘어서 아버지를 낳으셨고
할아버지는 막내인 아버지가 세 살 때 돌아가셨다니
할아버지에 대한 아버지의 추억은 그야말로 하얀 백지였을 것!

궁핍함 속에서도 할머니는 세 딸 중 하나를 학교에 보내어 공부를 시키셨으나,
불행히도 결핵 환자와 결혼하는 바람에
사별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결핵에 감염되어
친정에서 병치레를 하다 그만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하고 만다.

3

할머니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큰 아들이 결혼을 하여 결핵을 앓던 딸의 방에 신방을 차렸는데,
아뿔사, 그 방에 결핵균이 남아 있었다는 것!

이야기 그대로, 신방을 차린 후 그 방에서 감염이 되었는지,
아니면 그 전에 이미 감염이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나,
추측컨대 후자일 가능성이 더 많겠지만,
어찌되었든 기구하신 할머니는 큰 아들도 결핵으로 잃게 된다.

4

어린 자식들을 먼저 떠나보낸 데다
장성하여 결혼한 딸과 아들을 연달아 잃게 되자
할머니는 이제 하나 남은 막내아들마저 결핵에 걸릴까 두려워
큰 아들을 미리내 오지로 요양을 보내 놓고는 장례 때도 들여다 보시지를 않았다니…

어머니와 아내, 동생과 두 누이들을 그리워 하다 고독하게 죽어간 큰아버지의 쓸쓸한 고독함이며,
결핵으로 가엾게 홀로 죽어가는 큰아들을 찾아볼 수 없었던 할머니의 저 참혹한 심정에랴!

참척이라 했던가!
칼로 심장이 찔리는 고통을 겪으셨을 가엾은 할머니!

5

그런 사연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오신 할머니인지라,
맏손주인 나에게 쏟았던 각별함은 유별났었던 모양이다.

혹독한 가난과 쓰라린 궁핍으로 인해
맏손주에 대한 사랑이 더 극성스러우셨던 할머니에게
그러나 경을 칠 일이 일어났다.

보리쌀로도 끼니를 때우기 어렵던 시절,
초여름의 어느 날,
귀하디 귀한 쌀밥이 어떻게 생겨
할머니도 드리지 않고 나를 주었더니,
마루 끝에 차려진 밥상에 앉아
무슨 수가 틀렸는지
자꾸 투정을 부리다가는
그 귀한 밥을 냅다 마당에 내동댕이쳐 버렸다는 것!

데구르르 굴러가던 밥그릇은
결국 밥 따로 그릇 따로 굴러
아무도 못 먹고 생으로 버리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막힌 일이겠는가?

속이 상할 대로 상한 어머니는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마음으로
나를 번쩍 들어 광에 집어 넣고는
문을 열쇠로 꼭 걸어 잠가 버렸다.

6

캄캄한 어둠 속에서
무서운 공포감에 질린 나는 문고리에 착 달라붙어서는

"엄마, 안 그럴게!"
"엄마, 안 그럴게!"

자지러지게 소리질렀다.

갖가지 농기구와 연장들로 가득 차있던 그 광은
무슨 광이 창문 하나가 없어
문만 닫히면 빛 줄기 하나 없는 깜깜 절벽이다.

7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할머니가
득달같이 달려 와서는

"울지마, 울지마!
할머니가 열어 줄게"

아직도 아련히 울려오는
할머니의 간절하고도 다급한 저 음성!

문 밖에서 딸그락거리는 소리에
울음을 멈추고 나는 문에 착 달라 붙어 문이 열리기만을 고대했다.

그러나 잠시 후,
"아이구 안 열리네"
할머니의 답답한 한숨과 함께
딸그락 소리가 멈춘다.

문이 꼭 열리리라 기대했던 나는
다시 엄습해 오는 무서움에
소리소리 지르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열쇄를 구하지 못한 할머니는
겁에 질린 손주의 외마디 소리에
얼마나 안절부절 애가 타셨을까!

8

조금도 잦아들지 않는 경악의 소리!
절박해진 할머니가
다시 빈손으로 달려와 딸그락거리며 달래신다.

나는 또 다시 울음을 멈추고
여전히 불안감에 싸여
문이 열리기를 학수고대했지만
이번에도 할머니는
"아이구 안되네!"
맥없는 소리뿐이다.
나는 또다시 공포에 휩쓸려 울부짖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이 열렸고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나갔다.

잠깐 사이
온 몸에 땀이 쪽 흘렀고
물에 빠진듯 흠뻑 젖었다.

서너 살 나이의 어린 나에게는
너무도 끔찍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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