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평화와 선
평소와는 달리 인왕산행 산책 코스를, 산 중턱쯤의 경비처소가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잡았다. 바로 옆 성곽이 내려다 보이는 경관이 한 폭의 멋진 그림이어서, 한 컷의 사진을 담고 나무 계단을 밟고 아래로 내야가야 하는 곳이 나온다. 그런데 마침 노오란 길 고양이가 내가 내려가야 할 계단 중간쯤에서 세상 편안 자세로 늘어지게 쉬고 있는게 아닌가. 가까이 나를 쳐다보면서 그 자태가 자리를 뜰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 고양이야, 내 너를 그냥 무시하고 내려갈 수도 있겠지만, 그리도 편안한 자세로 쉬고 있는 너를 함부로 대하는 건 예의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래서 진로를 바꾸어 경비실이 있는 경북궁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고양이'하면 사실 난 어릴 적에 무척 좋아했었는데 언제부턴가부터 싫어하게 되었다. 사연인 즉은, 그토록 애지중지 새끼 때부터 길러오던 중고양이로부터 안고있던 손등을 무자비하게 할키고 뜯겨 수십년간 큰 흉터를 지니고 살아야 했다. 개였다면 그토록 사랑하는 주인에게 그랬을까? 늘 고양이는 개와 달라 얼마나 이기적인지...하는 그때의 안좋은 경험이 떠오르게 되니 말이다.
그래도 집고양이이건 길고양이이건, 미워서 쫒거나 학대하는 법은 없고, 곁에 와도 그냥 내버려두곤 한다. 늘 정원에 마주치는 여러 길고양이들이, 새끼를 낳아 모습을 보일 때라도 싫어하거나 쫒아버릴 기색없이 그냥 편안하게 지켜볼 뿐이니, 그 녀석들 역시 나를 경원시하는 태도는 전혀 없이 자연스럽게 지내고 있다.
그날 인왕산에서 마주친 길고양이를 피해 방향을 틀어 경복궁 쪽으로 내려오면서, 오래 뵙지 못해 인사를 드릴겸 '마르샤 자매님'을 뵐겸 광화문의 '폴란드 도자기' 가계로 발길을 돌렸다. 아들이 혼자 지키고 있었고, 엄마 아빠는 외출중이시지만 곧 돌아오신단다. 그러는중 곧 전화가...뭐가 통한건지, 곧 오신다면서 기다리라신다. 10분도 채안되어 나타나신 두 분- 무교동의 공보관에 다녀오시는 길이라며, 맛있는 고급 빙수 2개를 얻어 오셨다. 목마르기도 했지만 그 빙수 맛이 꿀맛이었다. 빙수를 먹으면서 길고양이 생각으로 웃음이 났다. 고양이를 무시해 그냥 직진을 했더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터인데..."고양이야, 참으로 고맙구나! 네가 아니더면 오늘 이런 일이 안일어났을 텐데 말이다."
조금은 다른 의미에서의 고사성어이지만 늘 마음에 담아 둔 글귀가 떠오른다.
'적덕자 필유경(積德者 必有慶)'이라, "작고 크건 덕을 쌓는 이에겐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난다."라는 말씀 말이다.